“들뢰즈 전기 저작 깊이 읽기”
1. 이 책을 발행하며
도서출판 b의 ‘바리에테신서’ 35번으로 존 로페(Jon Roffe)의 <질 들뢰즈의 저작 1: 1953~1969>(The Works of Gilles DeleuzeⅠ: 1953~1969, 2020)가 박인성(동국대 명예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저자가 ‘들뢰즈의 저작’이라는 이름으로 저술하는 두 권의 책 중 첫 권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1) <경험론과 주체성>(1953), 2) <니체와 철학>(1962), 3) <칸트의 비판철학>(1963), 4) <베르그손주의>(1966), 5) <냉담함과 잔인함>(1967), 6) <프루스트와 기호들>(1964), 7) <차이와 반복>(1968), 8) <의미의 논리>(1969) 등 들뢰즈의 전기 저작 여덟 권의 책을 쉽고 적절한 예를 들어가며 깔끔하게 요약해내고 있다.
그런데 목록에 전기 들뢰즈에 해당하는 저작 가운데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가 없다. 저자는 “많은 들뢰즈의 저작들이 다른 철학자들에 관한 연구서이고, 그래서 요약하고자 하는 모든 노력에 때때로 불편한 제3의 성격을 부여하는데, 이 책은 그 극단적인 경우”로 파악하며, 들뢰즈 독해의 참신한 면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스피노자의 사상에 대한 매우 많은 해설이 요구되기 때문에 골격적인 요약의 불가능성을 고백하며, 들뢰즈의 책 그 자체를 읽기를 권하고 있다.
본문에서 들뢰즈의 주저라고 알려져 있는 <차이와 반복>과 <의미의 논리>의 장은 각각 단행본으로 내도 될 정도의 길이를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들뢰즈의 저작이라는 이름 아래 다른 저서와 한데 묶어낸 것은 아마도, 한 권의 책에서 각 개별적 저서의 차이를 명료하게 드러내 보여주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 들뢰즈 입문서들은 들뢰즈의 모든 저작들을 몇 개의 개념, 혹은 몇 개의 부문에 편중해서 포괄적으로 소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들뢰즈를 이렇게 편중해서 포괄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각 주제에 나타나는 들뢰즈 사유의 독창성을 놓칠 수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우리가 들뢰즈를 편중하여 파악하지 않도록 들뢰즈의 저작 한 권 한 권 세세하게 독해하며 우리를 들뢰즈의 깊고 넓은 사유로 인도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들뢰즈 저작들의 내용은 수많은 방식으로 다르지만, 약간의 형식적 불변량들을 갖고 있”고, 이는, “들뢰즈가 말하는 내용은 어느 정도 다르긴 하지만 그가 그 내용에 대해 말하는 방식은 대체로 계속 일관된다는 점”임에 전제를 두고, 들뢰즈의 저작들이 갖는 형식적 상수 세 가지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들뢰즈 읽기에서 좋은 참조가 될 것 같다. 그 상수들을 간략하게 열거해본다.
첫째 상수는 ‘모든 들뢰즈의 책은 다른 사상가들과 복잡다단한 대화를 통해 전개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들뢰즈의 다양한 저작들을 독해하는 것은, 들뢰즈 그 자신의 기저에 놓여 있으면서 들뢰즈 그 자신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그를 인도하는 다른 이들의 저작을 독해하는 일이다. 둘째로, 들뢰즈의 저작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형식과 야망에 있어서 체계적이다. 들뢰즈의 리좀 개념으로 인해 그를 반-체계적인 사상가로 보는 어떤 독단적인 시각이 존재하지만 들뢰즈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오늘날 체계들이 붕괴되었다고 말들 하지만, 변화한 것은 오직 체계 개념일 따름이다.”(<철학이란 무엇인가?>) 셋째로, 들뢰즈의 체계적 시각은 본성상 형이상학적이라는 점. 그가 프란시스 베이컨을 다루거나, <안티-오이디푸스>나, <프루스트와 기호들>에서나 그 한가운데에서 본질의 범주, 그 원형적인 형이상학적 범주를 소환한다고 말한다. 들뢰즈 형이상학의 정확한 내용은 다양한 방식으로 변하고, 어떤 것은 매우 근본적이긴 하지만, 그것은 “철학이라는 단어의 전통적 의미에서 철학에 지나지 않는다.”(<두 유형의 광기>)고 부언한다.
2. 지은이 소개
■ 존 로페 Jon Roffe
오스트레일리아 디킨대학교 철학과와 멜버른 대륙철학학교에서 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질 들뢰즈의 경험론과 주체성>(Gilles Deleuze’s Empiricism and Subjectivity, 2016), <추상적 시장>(Abstract Market Theory, 2015), <바디우의 들뢰즈>(Badiou’s Deleuze, 2012), <질베르 시몽동: 존재와 기술>(Gilbert Simondon: Being and Technology, 2013. 공저), <라캉 들뢰즈 바디우>(Lacan Deleuze Badiou, 2015. 공저), <들뢰즈와 함께 실습하기: 디자인, 무용, 예술, 글쓰기, 철학>(Practising with Deleuze: Design, Dance, Art, Wri ting, Philosophy, 2018. 공저), <들뢰즈 철학의 계보>(Deleu ze’s Philosophical Lineage, 2009. 공저), <들뢰즈 철학의 계보 II>(Deleuze’s Philosophical Lineage II, 2019. 공저)가 있다.
■ 박인성 In-sung Park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명예교수이다. 저서로 <화두>, <법상종 논사들의 유식사분의(唯識四分義) 해석> 등이 있으며, 불교 역서로 <유식삼십송석―산스끄리뜨본과 티베트본의 교정ㆍ번역ㆍ주석>, <중(中)과 변(邊)을 구별하기―산스끄리뜨본ㆍ현장한역본>, <중변분별론소>, <유식삼십송 풀이―유식불교란 무엇인가>, <니야야빈두/니야야빈두띠까―산스끄리뜨본>, <불교인식론 연구―다르마끼르띠의 쁘라마나바릇띠까 현량론>, <아비달마구사론 계품―산스끄리뜨본ㆍ진제한역본ㆍ현장한역본>, <중론―산스끄리뜨본ㆍ티베트본ㆍ한역본>, <반야심경찬> 등이 있고, 철학 역서로 <질 들뢰즈의 철학>, <들뢰즈와 재현의 발생>, <생명 속의 마음―생물학ㆍ현상학ㆍ심리과학>, <현상학이란 무엇인가―후설의 후기 사상을 중심으로>, <현상학적 마음―심리철학과 인지과학 입문>, <유식사상과 현상학―사상구조의 비교연구를 향해서>, <현상학과 해석학> 등이 있다.
3. 차례
감사의 말 13
서론 15
들뢰즈 저작의 세 가지 형식적 상수들 l 이 책에 관하여
제1장 경험론과 주체성 23
두 명의 흄, 두 종류의 경험론 l 믿음, 가상, 이성 l 지성에서의 허구와 광기 l 도덕적 세계 l 주체성의 발생
제2장 니체와 철학 63
철학자로서의 니체 l 구조적 설명 Ⅰ: 힘과 질 l 구조적 설명 Ⅱ: 힘에의 의지 l 영원회귀 이론 l 계보학적 설명 Ⅰ: 의식에서 양심의 가책으로 l 계보학적 설명 Ⅱ: 허무주의와 변형
제3장 칸트의 비판철학 99
능력 이론과 초월론적 방법 l <순수이성비판>의 능력 이론 l <실천이성비판>의 능력 이론 l <판단력비판>의 능력 이론 l 역사와 “자연의 계략”
제4장 베르그손주의 131
두 종류의 다양체, 그리고 이것들의 혼동 l 직관의 방법 l 잠재적 공존으로서의 기억 l 경험에서 이루어지는 잠재적 기억의 현실화 l 과학과 형이상학의 공간과 시간 l 엘랑 비탈
제5장 냉담함과 잔인함 169
사드와 마조흐는 서로 보완이 되는가? l 마조흐와 사드의 언어 l 프로이트에게 있어서 충동들에서 부인으로 l 마조히즘에대한프로이트의설명이안고있는다섯가지문제점 l 아버지들과 어머니들 l 계약과 제도, 유머와 아이러니 l 도착과 반복
제6장 프루스트와 기호들 211
거미, 기호, 도제 생활 l 첫 번째 유형: 공허한 사교계의 기호들 l 두 번째 유형: 사랑의 기호들 l 세 번째 유형: 감각적 기호들 l 네 번째 유형: 예술의 기호들 l 본질: 특이성, 공통성, 계열, 집단 l 시간의 복수성 l 찾기의 본성 l 찾기의 주제
제7장 차이와 반복 251
<차이와 반복> 재고 l 비판: 차이에 대한 객관적 오해와 주관적 오해 l 철학사에 있어서 차이에 대한 객관적 오해 l 일의성 l 차이에 대한 주관적 오해 l 건립: <차이와 반복>에서 들뢰즈의 긍정적 기획은 무엇인가? l 잠재적인 것 Ⅰ: 칸트와 마이몬 l 잠재적인 것 Ⅱ: 미분법 l 잠재적인 것 Ⅲ: 잠재적인 것을 정의하기 l 강도 l 강도적 개체 l 시간적 종합: 시간 속의 동일성과 변화 l 인간 존재 l 개체-극-미/분화
제8장 의미의 논리 381
<의미의 논리>의 세 가지 주도적 물음들 l 두 종류의 사건 l 스토아학파가 행하는 신체들과 사건들 간의 구별 l 사건에 관한 다섯 가지 명제 l 언어와 의미 l 의미와 무의미 l 정신분석학의 요소들 l 첫 번째 발생 시점: 분열증적 심층의 시뮬라크르 l 두 번째 발생 시점: 상층의 아이콘 l 세 번째 발생 시점: 신체적 표면과 팔루스의 이미지 l 거세와 환영 l 네 번째 발생적 시점: 사유와 의미 l 사건의 윤리학
질 들뢰즈의 저작들 485
인용된 다른 저작들 487
후기 495
옮긴이 후기 497
4. 지은이의 말
내가 채택한 접근법으로 인하여, 다음에 오는 각 장은 들뢰즈의 저서들 하나하나에 대한 요약적 설명에 할애되고 있기에 독립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나는 모든 것을 포괄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들뢰즈 저작은 단 한 저작도 누구든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독자들 쪽에서 볼 때는 골칫거리이지만 그럼에도 그 못지않게 모든 훌륭한 철학 저작의 긍정적 특징인 어떤 것─외에도, 얼마 안 되는 지면으로 그의 책을 공정하게 평가하려는 시도 또한 모두 실패할 운명에 처할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들뢰즈의 저작들에 대해 확정적인 설명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다음에 오는 각 장은 문제가 되는 책의 척추와 주요한 구조적 뼈대들을 기술하면서 개략적인 윤곽을 제공할 것이다. 그러고 나면 더 미세한 골격, 근육 조직들, 그리고 다른 미세 구조들이 적합하게 제자리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확정적인 설명을 제시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 반드시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나는 설사 이 일이 심지어 가능하다 하더라도, 들뢰즈의 책들을 그 총체성 속에서 파악하게 될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리좀에 너무나 많은 기대를 걸었던 일부 사람이 옹호하는 견해와는 달리, 들뢰즈 저작에 대한 내 해명과 설명은 값진 노력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지은이 서문>에서
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은 <비평적인 것과 진단적인 것>과 같은 문학에 관한 들뢰즈의 저서들을, 영화를 공부하는 이들은 두 권의 <시네마>와 같은 영화에 관한 들뢰즈의 저서들을, 미술을 공부하는 이들은 <프란시스 베이컨: 감각의 논리>와 같은 예술철학에 관한 들뢰즈의 저서들을, 정치와 경제와 사회를 공부하는 이들은 <안티-오이디푸스>, <천 개의 고원>이라는 두 권의 ‘자본주의와 분열증’ 같은 정치철학에 관한 들뢰즈의 저서들을 읽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들뢰즈를 공부하는 이들이 들뢰즈의 어떤 저작을 읽든, <차이와 반복>의 틀을 이루는 중심 개념, 즉 탈근거, 근거, 토대 개념─이 셋은 불교의 공성이기도 하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 견지를 굳건하게 하려면, 또 일이관지하려면 들뢰즈의 모든 저작을 독파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옮긴이 후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