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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목서 피고 지는 조울의 시간 속에서

시리즈 b판시선 049
출판일 2022-02-18
저역편자 박두규 지음
출판사 도서출판 b
가격 10,000
도서규격 반양장본ㅣ124 x 194mm l 109쪽
ISBN 979-11-89898-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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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저잣거리의 경계에서 삶의 실재를 찾는 구도적 성찰의 시”

 

1. 이 책을 발행하며

 

박두규 시인의 신작 시집 <은목서 피고 지는 조울(躁鬱)의 시간 속에서>가 출간되었다.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이다. 64편의 시가 5부로 나뉘어 구성되었다. 시집은 발문이나 해설을 생략하고 시인 자신의 시작 메모 성격의 <사족>을 권말에 붙여 마무리하고 있다. 

시집은 시인이 근년에 꾸준히 자신의 시세계로서 추구해온 생명, 평화 사상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데 거기에 시적 주체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아이덴티티에 대한 강한 성찰적 사유가 덧보태지면서 진정성을 끌어올리고 있다. 시집의 제목에 나타난 조울이라는 정신의학적인 용어가 균형의 준거점으로 제시된 점이 눈길을 끈다. 조울은 세계에 대한 자아(Ich)의 역할이 균형을 잃고 어느 편으로든 기우는 현상를 말한다. 문학적으로는 객관적 거리의 유지가 상실되는 상태라 해도 좋을 듯하다. 시적 주체의 역할이 과잉 의욕적인 조(躁)와 무기력한 울(鬱)의 사이에서 어느 한편으로 기울지는 않았는지, 혹은 부지불식간에 놓쳐버린 것은 없는지를 묻는 반성적 성찰은 구도적인 느낌을 줄 만큼 절실하게 나타난다. 한편으로 성찰은 숲과 저잣거리라는 공간적 경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1956년생인 시인은 직업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다하고 “어느새 10여 년 홀로 숲에 들어와”(「두텁나루숲은 침수되지 않았다」)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지역적인 것에서부터 이념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다양한 실천적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그 실천이 정말 제대로인 것인지를, 바라보노라면 진실해지지 않을 수 없는 별빛을 향하여 되물으며 서원하고 있다.

“나는 홀로 그대를 탐문하며 별빛 사이를 흐른다. / 어둠 너머 고요 속 그대를 좇아가노라면 / 분노의 세상, 탐욕의 세월도 잊고 / 지독한 내 어리석음의 늪을 벗어날 수 있을까. / 깊은 밤 텅 빈 시간 속 / 별을 바라보는 그대와의 하얀 밤이 있어 / 허튼 약속 하나 없이 강을 건널 수 있으리.”(「별을 바라보는 날이 많아졌다」)라고. “시 한 수로 거침없이 세상을 재단하며 모든 것들이 가소롭던 치기 어린 시절도 가고 어느덧 세월에 발가벗겨진 스스로를”(「숲에 들어야 하는 나이가 되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촘촘히 들여다”(「두텁나루숲 하루 꿈 2」) 보면서 말이다. 

실천을 중시하는 주체에게 세계는 항상 명료하게 보일 수 있다. “한동안 내게 바람은 언제나 명확한 이분법으로 왔다. 흔들리는 것과 흔들리지 않는 것. 살며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숱한 다짐들이 나를 키웠”(「흔들린다는 것」)다. 하지만 그 세월 속에도 “더께 같은 미망(未忘)의 시간들”(「두텁나루숲 하루 꿈 4」)과 “무지와 오만의 세월이”(「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살구꽃이 환했다」) 없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이 뼈아픈 성찰적 계기는 무엇이며 어떤 목적으로 이어지는지가 궁금해진다. 그것은 숲의 삶을 통해서 “세상의 작고 가여운 것들”의 존귀함을 알고 나서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나무와 물고기, 새들에게도 고마움의 큰절을”(「어머니, 때죽나무꽃이 피었어요」)하며, 저잣거리에서의 미망들을 떨침과 동시에 “스스로의 존귀함을” 깨닫는 계기가 있었던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성찰의 목적이 ‘저잣거리’가 아닌 ‘숲’의 방식을 지향하고자 하는 생태환원주의적 인식은 아니다. 끊임없이 “꿈에서 깨어나오라”(「다르마의 일기 1~7」)고 벼리고 벼리며 쓰는 자신의 시는 “숲과 저잣거리를 직조(織造)하는 노래”여야 하며, 그래야만 “내 안에 평형수를 다 채우는 어느 날”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이어져 있다. 그것은 “지금껏 걸어온 모든 길을 잃”(「마지막 시집」)어 버리는 일일 수도 있지만, 시를 포함한 어떤 수단들에 의한 의미화조차 필요 없는 도저한 생의 목적인 그 자체로서의 ‘실재’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2. 지은이 소개

 

박 두 규  1985년 <남민시(南民詩)>, 1992년 <창작과비평> 가을호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사과꽃 편지>, <당몰샘>, <숲에 들다>, <두텁나루숲, 그대>, <가여운 나를 위로하다>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生을 버티게 하는 문장들>, <지리산, 고라니에게 길을 묻다>가 있다. 지역에서 <여순사건순천시민연대>와 <순천교육공동체시민회의>, <순천작가회의> 등을 조직하여 전교조 활동과 함께 했으며 이후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 <생명평화결사> 운영위원장,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공동대표, <지리산사람들> 대표, 문화신문 <지리산人> 편집인으로 활동하였다.

 

 

3. 차례

 

ㅣ시인의 말ㅣ 5

 

제1부 어둠 속 눈부시게 흐르는 강물을 보았지

붉나무 이파리 하나 내려앉았다 13

별을 바라보는 날이 많아졌다 14

어둠 속 눈부시게 흐르는 강물을 보았지 15

외로움은 사랑의 외피가 아니었다 16

나마스카 17

무엇이 그리 고마웠던 것일까 18

두텁나루숲 하루 꿈 1 21

두텁나루숲 하루 꿈 2 22

두텁나루숲 하루 꿈 3 23

두텁나루숲 하루 꿈 4 24

21C 사랑 25

26

 

제2부 숲에 들어야 하는 나이

은목서 피고 지는 조울(躁鬱)의 시간 속에서 31

흔들린다는 것 33

늙은 노을의 거친 숨소리를 듣는다 34

江이 말했다 35

고은 36

숲에 들어야 하는 나이가 되어 39

우울함으로부터 오던 詩의 강박이 40

타향살이 1 41

타향살이 2 42

고향 43

천년수(千年樹)를 보러 가서 44

얼레지 45

 

제3부 다르마의 일기

아장아장 그대를 걷는다 49

다르마의 일기 1 50

다르마의 일기 2 51

다르마의 일기 3 52

홀로 깨어 두텁나루숲 창문을 열고 53

풍경 속 풍경이 되어 55

물정(物情)도 모르는 시인이 56

텃밭에서 57

사십여 년 만에 친구를 만나서 58

어머니, 때죽나무꽃이 피었어요 59

빗방울 하나의 세상 60

色, 아름다운 세상 61

어떤 가여움 62

 

제4부 바람은 너의 소멸로부터 오고

어둠 속 모든 존재가 빛나던 화려한 달빛 세상 65

바람은 너의 소멸로부터 오고 66

95세 빨치산 여전사 68

태몽 73

10월의 꿈 75

3ㆍ1의 세상 76

오월과 유월 사이 78

가을 숲에서 김남주를 생각하다 79

불온한 바다 80

낙지와 오징어 81

시월의 숙제 83

샛노란 활엽의 시월 85

백두산 못 갑니다 86

1948. 10. 19. 89

 

제5부 문득 고개 돌려보니 살구꽃이 피었다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살구꽃이 환했다 93

봄노래 94

다르마의 일기 4 95

다르마의 일기 5 96

다르마의 일기 6 97

다르마의 일기 7 98

두텁나루숲은 침수되지 않았다 99

슬며시 들어온 고니 한 마리에 100

마지막 시집 101

우답현문(愚答賢問) 102

무지(無知) 103

평화네 집 104

순천(順天) 106

 

ㅣ사족ㅣ 107

 

 

 

4. 본문에서

 

 

<은목서 피고 지는 조울(躁鬱)의 시간 속에서>

 

 

무리 지어 피어나는 작은 꽃들

내밀한 속살에서 배어나는 은은한 향내

피고 지는 하얀 꽃들의 시간 너머로 

끈질기게 소환되는 기억들

 

그 어디쯤에서 되살아나는 

내 오랜 갈애渴愛의 숨소리

그 기억의 골목길을 비틀거리는 

젊은 날의 빛나던 어둠과 

어둠 속 두려움

 

이것들은 지금껏 

무엇을 살다 다시 왔을까

은목서 피고 지는 조울(躁鬱)의 시간 속으로 

이제 와 다시금 

나를 불러 세운 까닭은 무엇인가

 

나는 왜

불현듯 불온한 거리에 내몰려 

향기에 취한 탐진 세상을 기웃거리는가 

더듬거리며 보이지 않는 그대를 찾아온 세월은 

그 사랑은 정녕 어디에 있는가

 

* * * * * *

 

<물정(物情)도 모르는 시인이>

 

 

텃밭에서 일하다 허리를 펴고 버릇처럼 강을 바라본다. 힘차게 강을 차오르는 하얀 고니 떼들 사이로 문득 어머니가 웃고 있는데 그녀의 말이 생각난다. 등단 후 처음으로 원고료를 주는 청탁서를 받고 나서 ‘어머니, 내가 그래도 시인이네요’ 하니 ‘아이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것이 어떻게 그런 것을 다 허냐’ 하신다. 생각해보니 생전의 그녀보다 더 많은 나이를 먹었는데도 나는 아직 물정 모르는 변방의 시인일 뿐이다. 아, 이제 그녀가 없으니 그 말을 수정할 수도 없구나.

 

* * * * * *

 

<순천(順天)>

 

 

순천에 와서 순천(順天)하려면

먼저 흐드러진 꽃길의 동천(東川)에 발을 씻고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순천만의 바다에 이르러야 하리

바다에 누운 와온臥溫의 저녁놀을 보며 

지치고 힘들었던 일상도 내려놓고

오랜 외로움도 달래야 하리

그렇게 무인(無人)의 섬들과 

깊고 푸른 여자(麗姿)를 만나야 하리.

순천에 와서 순천(順天)한다는 것은

바다 위로 떠오르는 별들을 

아무런 생각 없이 헤아리고

하늘을 향한 그리움을 키우는 일이어야 하리

그리하여 새들이 돌아오는 갈대숲에 이르러

마침내 스스로의 본향(本鄕)을 기억해내는 것이리

순천에 와서 순천(順天)한다는 것은

 

 

5. 시인의 말

 

위기의 절정에서 피어나는 이 인류세(人類世)의 사랑은 

보이지 않는 내가 보이지 않는 너를 사랑하는 것이다. 

 

 

6. 추천사

 

​시인은 시종 깊고 아득한 것을 향해 마음과 눈을 두고 있다. “주변의 모든 생령生靈들에 눈을 뜨면서 (…) 언젠가부터 외로움 또한 사람으로부터 오지 않았다”(「외로움은 사랑의 외피가 아니었다」)는 고백은, 저잣거리의 비린내에서 가까스로 놓여나 “10여 년 홀로 이 숲(지리산 자락)에 들어와” 살며 그가 도달한 마음의 근황으로 보인다. 이번 시집은 이 ‘눈뜸’의 과정에서 얻은 찬탄讚嘆들의 묶음이어서 ‘실재’와 ‘본향’을 향한 시인의 구도의 기록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그의 발이 혹여 땅에서 떨어질까 나는 섣불리 걱정하지 않는다. “아직도 스스로를 통속通俗하지 못한 채 선악의 한 금을 그었다 위선僞善의 끝은 어디인가”(「두텁나루숲 하루 꿈 3」) 같은 언급에 비치는 칼끝 같은 자기 추궁이 물밑에 흐르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며, “사회적 실천과 함께 자기완성이라는 내적 진보를 반드시 동시에 진행시켜야 한다”(「사족」)는 그의 오랜 믿음이 스스로를 구현해가는 한 길목에 이 시집이 있음을 짐작하기 때문이다.

젊은 날 이래 그의 독실함을 보아온 사람이라면, 새벽 샘물같이 정갈한 그의 시편들이 마침내 세간의 어수룩하고 거친 것들도 아우르는 크나큰 원만으로 나아가게 될 것을 의심치 않을 것이다. -김사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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