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을 발행하며
이 책 『여자가 없다고 상상해봐: 윤리와 승화』는 조운 콥젝(Joan Copjec)의 IMAGINE THERE’S NO WOMAN: Ethics and Sublimation(2002)을 완역한 것이다. 조운 콥젝의 이 책이 추구하고 있는 것은 라캉주의적 정신분석의 윤리인데, 그것이 가리키는 것은 당연히 여성 주체성의 구현이다.
정신분석과 윤리는 어째서 필연적으로 연동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것은 정신분석이 무엇보다도 충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충동과 윤리의 전형적인 관계맺음은 길들임 내지는 억압이었다. 충동적으로 행동한다는 말은 비문명적으로 행동한다는 말, 더 나아가 비윤리적으로 행동한다는 말과 동의어다. 철학적 윤리학은 충동을 언제나 배척해왔다.
하지만 근대 이후로 충동을 문화적으로 길들이는 거시적이거나 미시적인 문화적 장치들이 공동체의 해체와 더불어 와해되어 가고 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한국의 경우 서양에 비해 이러한 공동체는 훨씬 더 급격하게 해체되었으며, 따라서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이런저런 충동들이 전사회적으로 분출하는 현상을 목격하고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라캉주의 정신분석학자 조운 콥젝은 충동과 윤리를 매개하는 수단으로 승화라는 개념을 끄집어낸다. 콥젝은 프로이트에게서 승화 개념이 불충분하게 발달되었다고 진단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프로이트는 충동이 가는 길 중 하나를 승화라고 보았으며, 여기에는 가령 학문이나 예술이 포함된다. 아주 단순하게 말해서 성적 충동이 학문이나 예술로 승화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승화를 통해서 무엇이 정화되는 것일까? 프로이트는 원시적 감각들이나 육감적 즐거움이 정화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라캉의 정신분석 이론에 의지하고 있는 콥젝은 오히려 “우리의 결점을 꾸짖기 위해 초자아가 설정하는 상상적 이상들에 대한 우리의 굴종을 촉진시키는 그런 감정들”로부터 정화된다고 말한다. 정신분석에서 통상 초자아는 윤리의 자리였지만, 콥젝은 초자아로부터의 해방을 승화와 연결시킨다. 이는 이제 우리가 충동의 만족과 관련하여 좀 더 긍정적인 윤리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해준다.
그렇다면 왜 여자는 이러한 승화의 윤리와 관련 하에 특권화되는가? 이에 대해 콥젝은 다음과 같은 답을 내놓는다. “사실 남자보다 여자가 향유의 신에 더 쉽게 접근한다면 이는 여자가 남자보다 초월의 유혹에 덜 좌우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콥젝이 이 책에서 보편적 윤리가 아닌 여자의 윤리를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다만 콥젝은 역사적으로 여성이 고난을 통해서도 획득하고 유지한 문화적 자원을 인류를 위해 제안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 책 『여자가 없다고 상상해봐』는 이미 도서출판 b에서 출간한 바 있는 레나타 살레츨의 『사랑과 증오의 도착들』, 알렌카 주판치치의 『실재의 윤리』와 더불어 라캉주의 정신분석 여성학자 삼총사의 윤리학 저서들의 출간을 완결하고 있다.
■ 차례
서론: 여자가 없다고 상상해봐 _ 9
1부 승화라는 여성적 행위
1. 고집의 무덤: <안티고네>에 관하여 29
근대기의 불멸성 _ 42 ㅣ 죽음 충동: 포이어바흐에 관한 프로이트의 테제 _ 52 ㅣ 견디려는 고집스러운 욕망 _ 80
2. 나르시시즘, 비껴 접근하기 93
부분 대상 _ 95 ㅣ 나르시시즘과 승화 _ 106 ㅣ 신디 셔먼의 <무제 영화 스틸> _ 126
3. 이집트인 모세와 남북전쟁 이전 남부의 뚱뚱한 흑인 유모: 프로이트의 인종과 역사 145
블랙 바로크 _ 167 ㅣ 인종적 정체성이라는 작자 불명의 근거 _ 177
4. 울음의 발명과 행위의 반연극성 183
히스테리아 대 몰입 _ 183 ㅣ <스텔라 달라스>에서의 다양한 관객성 _ 200
2부 악과 관람자의 눈
5. (무)한한 세계의 시대에서의 악 225
죄 있음 _ 237 ㅣ 법과 처벌 _ 244 ㅣ 은총 _ 252
6. 시큼한 정의 혹은 자유주의적 시기 265
시기와 정의: 롤스 _ 274 ㅣ 아름다움과 정의: 스캐리 _ 284 ㅣ “평등 공리” _ 292
7. 시각의 버팀목: 본다는 것의 육체적 지탱물 297
8. 자프루더가 본 것 327
아마도 대타자가 _ 341 ㅣ 불안과 응시 _ 359 ㅣ 절대적으로 대타자가 _ 365
인명 찾아보기 _ 381
작품명 찾아보기 _ 391
용어 찾아보기 _ 393
옮긴이의 글 _ 411
■ 지은이 소개
조운 콥젝 Joan Copjec
미국 브라운 대학교 근대문화와 미디어학과 교수. 오랫동안 『옥토버』의 편집위원이었으며 현재는 버소 출판사에서 나오는 『S』의 편집위원이다. 2013년 브라운 대학교로 옮기기 전에 재직하던 버펄로의 뉴욕 주립대에서는 <정신분석과 문화 연구 센터>의 소장을 역임했으며 여기서 1995년부터 잡지 『Umbr(a)』를 발행했다. 『내 욕망을 읽어봐: 역사주의자들에 반대하는 라캉』(Read My Desire: Lacan against the Historicists)을 비롯, 11권에 이르는 저서 및 편저서를 출간했으며 각종 저널과 저술들에 60여 편에 달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김소연
영화학 박사. 연세대와 서강대 영상대학원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실재의 죽음』, 『환상의 지도』, 『라캉과 한국영화』(공저)가, 옮긴 책으로는 『삐딱하게 보기』, 『영화에 관한 질문들』, 『항상 라캉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히치콕에게 물어보지 못한 모든 것』 등이 있다.
박제철
영화학 박사. 싱가포르 국립대 영문과 교수. 지은 책으로는 『라캉과 한국영화』(공저), 『World Cinema and the Visual Arts』(공저)가, 옮긴 책으로는 『신체 없는 기관』(공역), 『이라크』(공역) 등이 있다.
정혁현
신학 석사. 영상원 영상문화이론 예술전문사 과정 수료. 한살림교회 목사. 지은 책으로는 『영화가 재밌다 말씀이 새롭다』, 『라캉과 지젝』(공저), 『라캉과 한국영화』(공저) 등이, 옮긴 책으로는 『이웃』, 『성서의 공유사상』, 『맥주, 타이타닉, 그리스도인』, 『전쟁과 선』 등이 있다.
■ 책 속에서
“여자는 실존하지 않는다.”라는 라캉의 악명 높은 명제는 어떤 충격 가치에 그 의미를 희생해왔다. 그 명제의 악명은 그것에서 실제로 충격적인 것을 이해하려는 진지한 노력들을 가로막아 온 것이다. 실제로 충격적인 것은 그 명제가 존재를 복수적이고 부분적인 것으로서, 충동의 작은 대상들로서 정의하는 것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에 동기를 부여하는 명령은 여자가 없다고 상상해봄으로써, 즉 이 명제가 내포하는 존재 개념의 여파가―윤리에 있어―어떠한 것인지를 상상해봄으로써 그 명제를 진지하게 취급하라는 것이었다. 정신분석의 윤리는 존재론에 대한 그 기본적인 비판으로부터, 즉 충동과 승화의 이론으로부터 나온다. 정신분석은 주체의 존재론에 대한 철학적 탐문들을 충동과 승화의 이론으로 대체하기 때문이다. 이 윤리의 관심사는 주체가 존재의 이 작은 조각들과 맺는 관계이다. 주체가 타인들이나 대타자Other와 맺는 관계가 그 일차적인 관심사가 아니다. -지은이 <서문>에서
이 책 <여자가 없다고 상상해봐>의 부제는 “윤리와 승화”, 오늘날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라캉에게 당도하게 해준 바로 그 이정표를 치켜들고 있다. 물론 윤리도 그렇고 승화도 그렇고 그리 신선한 개념은 아니다. 윤리는 사유의 역사 전체를 관통해온 관심사였으며 승화는 이미 다중의 생활언어가 된 지 오래다. 그렇다면 21세기를 진지하게 감당해 나가려는 지구인들에게 오늘날 새삼 윤리와 승화의 문제가 다시 부각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이 정신분석적 관점에서의 윤리와 승화를 특별하게 하는가? 이 책의 제목은 이미 그 답을 내비치고 있다. 정신분석적 윤리는 승화의 문제이기도 하며 윤리가 됐든 승화가 됐든 그것은 여자에게만 허용된 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단언은 도발적이다. 더군다나 오늘날처럼 여성 혐오가 (깽)판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물론 그처럼 예외적으로 폭력적인 현실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주장은 여전히 반사회적으로 느껴진다. 지금은 차이를 억압하지 않(아야 하)는 시대, 다문화의 시대가 아닌가. 그런데 이처럼 배타적인 관점이라니? 어떻게 지구인의 절반을 배척하겠노라 주장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이러한 관점이 여성들의 환영을 받은 것도 아니다.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라캉의 테제(에 대한 오해)는 페미니즘과 라캉 정신분석의 양립을 결정적으로 가로막은 바 있다. 자, 이러한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올 것인가? -<옮긴이의 글>에서
■ 추천사
프로이트와 라캉의 텍스트를 엄격하고도 철저하게 따라가면서 콥젝은 어떻게 프로이트에게 충동 이론이 고전적 존재론의 장소를 점하는지, 어떻게 라캉의 윤리학이 ‘존재의 전체’란 없다는 그의 주장에 근거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어떠한 국지적 이론화도 멀리 초월해 버리는 사유의 투영을 정신분석에 제공한다. 콥젝은 이렇게 말한다. “나의 논변들은 정신분석이 우리의 근대성의 모국어이며 우리 시대의 중요한 쟁점들은 정신분석이 벼려왔던 개념들 밖에서는 거의 설명할 수 없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콥젝의 이 책은 현대 이론에 깊고도 지속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조운 콥젝의 이 책은 정확한 개념적 논의와 그 상상적 적용의 짜릿한 혼합이다. 그녀는 프로이트를 카라 워커와, 파솔리니와 자프루더를, 버사니와 신디 셔먼을 섞어 넣는다. 콥젝은 종종 육체, 성, 여성을 결정적으로 삭제했다는 오해를 받는 칸트 및 라캉과의 포괄적인 연계를 유지한다. 그처럼 뻔한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놀라운 소식이 될 책이다. ―줄리엣 플라워 맥캐널
“누가 가장 위대한 작곡가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로시니는 “베토벤”이라고 대답했다. 인터뷰어가 “모차르트는?”이라고 물었을 때 로시니는 조용히 되쏘아주었다. “모차르트는 가장 위대한 작곡가가 아니오. 그는 유일한 작곡가요.” 조운 콥젝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해야 한다. 그녀는 단지 미국의 ‘가장 위대한’ 라캉주의자가 아니다. 훨씬 더 근본적인 의미에서 그녀는 미국의 유일한 라캉주의자다. 이 책은 어떤 기준에 입각해 ‘위대’한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위대함’의 기준을 재규정한다. 여기서는 라캉주의 정신분석과 페미니즘이라는 두 계열이 두 분야를 완전히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만난다. 『여자가 없다고 상상해봐』를 읽고 나면, 낡은 방식을 지속하는 누구라도 20세기에 플로지스톤을 옹호하는 물리학자처럼 보일 것이다. 오직 보부아르의 『제2의 성』 같은 고전만이 그래도 콥젝의 이 책에 필적할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