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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소개된 b

2021.10.12 00:44

한겨레신문 | 소크라테스가 아고라로 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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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기원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 비·2만원

 

일본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석한 자리에서 문득 깨달았다. ‘소크라테스가 민회가 아닌 광장으로 간 것도 데모를 하러 간 것과 같지 않은가.’

 

<철학의 기원>은 ‘철학’과 ‘민주주의’라는 두가지 키워드로 세계 시스템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사상적 뿌리를 탐사한다. 지은이 가라타니 고진은 2010년 발표한 <세계사의 구조>에서 민주주의의 기원이 고대 그리스 아테네가 아니라 현재의 터키와 그리스 일부인 이오니아라고 주장했다. 그곳의 ‘이소노미아’(무지배)가 현재 민주주의 시스템의 뿌리라는 것이다. 이번 책에서 지은이는 전작보다 더 집요하게 이오니아 사상과 정치의 복권을 주장하며, 새로운 ‘소크라테스론’을 통해 철학과 민주주의의 기원을 파헤친다.

 

소크라테스는 민회에 참석하지 말라는 다이몬(정령)의 명령에 따라 아고라(광장·시장)에 섰다. 그곳에는 아테네 혈통의 남자 시민이 아니기 때문에 민회에서 배제된 여성, 외국인, 노예 들이 모여 있었다. 아테네 남자들이 가진 배타적인 시민권을 거부한 소크라테스는 ‘데모스’(시민의 지배) 바깥에서 사람들과 대화한 것이다. 이는 이오니아의 ‘무지배’ 원리와 관련이 있다.

 

기원전 10세기에서 8세기까지 그리스 본토 사람들의 활발한 식민활동 덕분에 이오니아 도시들이 생겨났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와 달리 이오니아는 경제적으로 노예제 생산에 기대지 않았고 적극적으로 상공업과 교역에 종사했다. 교역은 사적이었으며 독점이 없어 이윤은 평준화되었다. 사회적으로는 씨족사회 전통과 단절했고, 이동이 자유로웠으며 지배와 피지배가 없었다. 특정 폴리스에서 불평등이나 지배-피지배가 생길 땐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그만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지은이는 근대 철학의 뼈대를 이루는 ‘자기’와 ‘윤리’가 등장한 것이 이오니아였다고 주장한다. 이민자들로 이뤄진 이오니아는 태어남의 운명에 따른 씨족공동체 전통과 무관했기 때문에 일찍이 ‘개인’이 성립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이오니아의 정신을 받아들여 아테네에서 처음 ‘개인’으로 살아가려 한 인물이었다고 지은이는 설명한다. “그는 동시에 아테네라는 폴리스의 일원이라는 것을,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이유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선택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했다.” 따라서 그는 아테네에서 도망치지 않고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책의 후반부에서 지은이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차이를 밝히는 데 집중한다. 소크라테스는 다이몬의 목소리에 따라 나랏일을 하는 ‘공인’이 아닌 ‘사인’으로서 정의를 찾으려 했다. 반면 플라톤은 스스로 국가의 일에 종사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생각이라며 ‘철인왕’을 주장했지만, 지은이는 이것이 소크라테스와 거리가 먼 것이라고 본다. 소크라테스는 공사 구분을 극복하고 나랏일을 하는 공적 민회가 아닌 아고라에서 시민에게 필요한 변론술을 가르치며 ‘아래로부터의 변혁’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혼’이 육체를 통치하는 상태를 목표로 삼았지만 소크라테스는 통치 자체의 폐기, 이소노미아(무지배)를 목표로 했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역이용한 셈이 된다.

 

종합하면, 플라톤은 아테네에 데모크라시를 만든 이오니아 정신을 몰아내는 것을 평생의 과제로 삼으며 혼에 의한 지배라는 사고 위에서 ‘신학’을 구축했다. 그는 이 사상의 모든 것을 소크라테스의 이름으로 전했다. 그러나 실제 소크라테스는 “이오니아의 사상과 정치를 회복하려고 한 마지막 인물”이었다. 따라서 지은이는 “아테네의 데모크라시가 현대 자유민주주의(의회제민주주의)와 이어진다면 이오니아의 이소노미아는 분명 그것을 넘어서는 시스템의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전작에서 밝힌바, 지은이는 교환양식 A(증여와 답례:호수), B(지배와 보호), C(상품교환)를 넘어서는 무언가로서의 교환양식(D)이 있다고 설명한다. 교환양식 D의 최초의 사례는 이오니아의 정치와 사상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2012년 ‘기노쿠니야 인문대상’을 받았다. 2003년부터 가라타니 고진, 슬라보이 지제크, 자크 랑시에르 등 사상가들의 저서를 줄기차게 소개해온 ‘작지만 강한 출판사’ 도서출판비(b)의 100번째 책이며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13번째 책이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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