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은 표준어 교사? 돌 맞을 말은 안 했는가?”
1. 이 책의 소개
<아나운서 강재형의 우리말 나들이>는 1997년부터 현재까지 MBC TV에 방영되는 <우리말 나들이>를 기획하고 진행했던 강재형 아나운서가 ‘우리말을 올바르게 쓰자’는 취지로 쓴 책이다.
이 책은 우리말을 바르게 쓰자며 내놓은 여러 교과서 같은 책이 아니라 현직 아나운서가 ‘적어도 마이크를 잡은 방송인이라면 우리말을 제대로 구사했는지, 하는지’ 시시콜콜 따지고 캐묻는 책이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보고 듣는 사람들은 방송을 표준어 교사라고 믿는데, 지은이가 35년 동안 방송 언어를 접한 경험을 쓴 이 책은 ‘방송국에 돌을 던져야 할 판’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 책은 많은 사람이 바로 눈앞에서 보고 듣는, 살아 있으며 영향력이 큰 방송에 나오는 말에 현미경을 들이대지만 표준어를 나열하는 교과서가 아니라서 읽는 재미가 있다. 아나운서의 말실수부터 퀴즈, 대담, 연속극, 오락, 광고, 스포츠 중계와 해설 등에서 ‘말도 안 되는 말’이 나오는 상황을 눈에 선하게 보이도록 쓴 에세이이다.
아나운서라는 직업의 의무감에서 시작한 지은이의 우리말에 대한 관심은 선배들에게 배우고, 관련 서적 수백 권을 훑으며 종이 사전을 끼고 살기에 이르도록 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일본식 표현 순화’의 뿌리를 캐려고 일본어를 배우기도 했고, 표준어 규정과 사전 속의 내용을 익히며 ‘원칙주의’를 지켰다. 지은이는 동료 방송인들도 우리말 바로 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실천한다면 효과가 적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1993년 익히고 알게 된 우리말 이모저모를 엮어 사내용으로 ‘우리말 나들이’를 인쇄해 돌렸고, 4년 뒤에는 TV 프로그램 <우리말 나들이>를 만들었다.
<아나운서 강재형의 우리말 나들이>는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틀린 말을 지적하고 순화하지만 원칙만을 고수하지 않고 우리말의 ‘변화’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방송 프로그램이 다양한 만큼 다양한 세대와 직업, 여러 상황을 등장시켜 그들, 그곳에서 많이 써 표준어로 사전에 올라 있는 언어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지은이는 “말글살이의 흐름을 끌어가는 세대도 새로워져야 한다”라고 말한다.
아나운서 강재형의 우리말 나들이는 모두 5부로 구성됐다. 우리가 늘 쓰는 언어 가운데 바로 잡아야 할 말들은 무엇이고 이를 바르게 쓴 말은 무엇인지 제시하고 있다. 우리말이라 하더라도 비슷한 말을 상황에 맞지 않게 쓰거나 구별하지 않고 쓰는 사례들은 1부에, 표준어 규정이 바뀌어 사이시옷과 복수 표준어를 쓸 수 있는 사례들은 2부에 실었다.
3부는 우리말의 외국어 투와 우리말 속 일본어 잔재들을 바로 잡았다. 외래어도 정해진 표기법에 따라 정확히 써야 하는 예도 들었다. 법조문의 ‘징역 유월’과 ‘집행유예 시월’을 바로잡지 못하는 건 “법전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라는 법조계의 말을 인용한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바르게 쓰고 정확하게 말하기’는 방송의 의무다. 특히 정확하게 말하기는 생소하지만 ‘표준 발음법’이 엄연히 존재하고 정보를 잘 전달해야 하는 방송에서는 이를 어떻게 지키는지 흥미로운데, 이를 4부에 실었다. 흔히 쓰는 외국어를 대신할 우리말이 없는 것 같지만 쓰지 않아 잊혀진 토박이말을 살려 대신한 사례들은 5부에 들었다. 지은이는 토박이말을 발굴하지 못하는 데 안타까움을 표시한다. 북한의 문화어와 연변의 조선어 등에서 외국어를 대신할 토박이말은 없는지 살피는 대목도 있다.
이 책은 대중의 언어 습관에 큰 영향을 미치는 방송, 언론에서조차 틀리게 쓰는 말들을 지적하면서도 원칙을 고수하지 않고, 규범과 원칙과 품격을 지향하되 일상의 쓰임과 신조어의 발랄함도 맛볼 수 있는 책이다.
2. 지은이 소개
■ 강재형 : 서울 불광동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마치고, 같은 대학 언론대학원에서 방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1987년부터 문화방송 아나운서로 일하고 있다. 방송언어 연구와 바른 우리말 방송에 이바지하여 2008년 한글학회의 ‘우리말지킴이’ 선정, 2013년 아나운서들이 시상하는 ‘아나운서대상’ 수상, 2014년 ‘한국어문상 대상’ 수상, 2020년 한글날에 ‘한글발전유공’으로 국민포장을 수훈했다. 현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언어특별위원회 위원, 법무부 교화방송자문위원회 위원장이다. 문자를 바탕으로 추상 작품을 만드는<텍스토그램>(TexToGram)(2016), <동주_2021>(2021) 등의 전시 작업을 하는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퀴즈아카데미>, <장학퀴즈>, <새미기픈물>, <늘푸른 인생>, <테마기획 정보뱅크>, <스포츠 하이라이트>, <생방송화제집중> 등의 TV프로그램과 <MBC뉴스>를 진행했으며 <베이징올림픽>을 비롯한 온갖 중계방송과 <오늘의 스포츠>, <가요스포츠>, <FM문화가이드> 같은 여러 라디오 프로그램
을 거쳤다. 우리말 에세이 <애무하는 아나운서>, <방송화법>, <강재형의 말글살이>, <카레이싱 이야기>, <F1의 모든 것>, <아나운서 말하기 특강> 등을 펴냈다.
3. 차례
책머리에 5
제1부_ 비슷한 말, 제대로 구별하여 쓰기
김치를 담가 장독에 담다 21
장가드는 후배에게 22
시집가는 후배에게 24
살인을 저지른 주인공 27
데미 무어 닮았네요, 두꺼운 목이 29
이상과 현실은 너무 틀려 31
홀홀단신 혈혈단신 33
여인의 한 맺힌 서리가 내리겠습니다 36
쌍거풀 수술, 실밥이 튿어졌네 38
하다와 못 하다는 하늘과 땅 차이 39
계피떡과 알타리 김치 41
안개비, 이슬비, 가랑비, 굵기를 재어 볼까? 46
엉덩이와 궁뎅이 48
동강의 노루궁뎅이 51
실수로 허벅지에 손이 스쳤을 뿐 55
헷갈리는 고기 이름 58
‘먹방’에 나오는 살치살, 마구리는 무슨 부위? 61
삼십 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 64
안중근 의사와 유관순 열사 66
음력 섣달, 음력 정월 68
딸내미 생일날 72
녹슬은 철조망 74
문익점의 붓뚜껑 77
조약, 늑약 79
속 다르고 소 다르다 82
뿌리와 부리 85
자반고등어인가 고등어자반인가 87
오이소배기는 싫어요 90
제2부_ 그땐 그랬지, 표준어 규정의 변화
짜장면의 복권 95
그땐 ‘돌’과 ‘돐’이 달랐지 97
시골말과 서울말 100
태곳적 장맛비 104
먼지털이와 쓰레받이 107
강더위 강추위 111
안녕하세요, 문화가이드 강재형입니다 113
아카시아는 없다 116
적어도 방송인이라면 120
야로, 야료, 야지 123
새벽 두 시는 새벽인가 125
의례 성대묘사라고 하는데 128
삼가해 주십시요 130
제3부_ 한자말, 일본말, 국적도 없는 말
환각제이자 여주인공, 헤로인 135
아이들은 몰라도 되는 한자말 표지판 138
한자 좋아하다 망신당한 방송인 140
여관에서 만납시다 144
‘하고 회’ 먹자 148
오뎅을 허하라 153
돼지털, 디지를 …… 156
헬리콥터가 싫으면 잠자리 비행기 158
모든 국어사전은 다 틀렸다 160
‘실버리 아다지오’여 영원하라 165
영어로 도배한 신문 들춰 보기 168
007 … 공공칠, 영영칠? 171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172
6월에 감옥으로 오세요, ‘징역 유월’ 176
아직도 수입해 쓰는 일본말 178
옛날 옛적 일어 번역본을 중역하던 시절에 184
기특한 서울시 새 청사 188
왜 대ㆍ소문자를 구분하나 190
리리릿자로 끝나는 말은 192
깡소주는 있어도 깡맥주는 없다 195
겜뻬이를 아십니까 197
제4부_ 바르게 쓰고 정확하게 말하기
달걀은 닭의 알입니다 203
외래어와 외국어는 엄연히 다르다 206
원어민 발음 따라하기, 아나운서 발음 따져보기 208
상기하자 ‘도살장’ 210
‘애무’하는 아나운서 213
똑 사세요 215
밥만 해도 125가지? 217
새우젓 먹고 크는 아기 219
천자총통, 천척총통 221
납량 특집 납양 특집 223
엄연히 존재하는 표준 발음법 225
애당초 애시당초가 틀렸다 227
제5부_ 캐내어 닦으면 빛나는 토박이말
탁월한 문장 감각, 그리고 맞춤법 233
언어운사 237
덤탱이, 덤터기 240
동계 올림픽, 겨울 올림픽 245
제가 깁니다 247
립스틱 짙게 바르고 250
사전에 없는 토박이말 253
우리가 몰랐던 장난감 이름 255
대통령은 ‘종’이다 257
프돌이는 밤하늘 색 261
고속도로와 반도체 263
남한말 북한말 265
서울말 듣기 좋습네다!! 270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라는 교훈 담은 동화 ‘파랑새’ 273
북쪽에 여동생이 생겼다 276
찾아보기 282
4. 책 속에서
이렇듯 ‘성희롱’에 대한 인식이 제법 틀을 갖추어 가는 듯한 요즈음 확실히 짚고 넘어갈 우리말 몇 가지가 있다.
먼저 ‘허벅지’이다. 앞서 인용한 ‘실수로 허벅지에 손이 스친’ 경우는 진짜 실수일까 아닐까. 표현만 놓고 본다면 그 말은 새빨간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다. 허벅지는 실수로 손이 스칠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허벅지는 허벅다리의 안쪽 살 깊은 자리를 뜻하는 말이다. 실수로 닿을 수 있는 곳은 넓적다리의 위쪽 부분, 곧 허벅다리일 뿐이다. 허벅다리의 안쪽 깊은 데라면 사타구니 가까운 곳이다. 그래서 부하 여직원의 허벅지에 손이 닿는 상황은 실수가 아니다. ‘실수’가 아니라 ‘작심’해야만 손이 갈 수 있는 부분이 허벅지이다. -(<실수로 허벅지에 손이 스쳤을 뿐>, 55~56쪽)
문화방송이 내보냈던 드라마 제목 가운데 <자반고등어>란 게 있다.
이 일일연속극 첫 방송이 있던 날 여의도 문화방송 지하 구내식당―문화방송 사원들은 이곳을 ‘살롱’이라고 부른다―점심 차림이 바로 ‘자반고등어 정식’이었다. 그날 이후 때가 되면 구내식당 상차림으로 나오는 게 바로 ‘자반고등어 정식’이다.
‘고등어자반’이 맞는가, ‘자반고등어’가 맞는가. -(<자반고등어인가, 고등어자반인가>, 87쪽)
산내리 어르신이 ‘시방 우리가 …’라 하니 ‘친절한 제작진’은 자막을 달아 뜻을 설명해주었다. ‘시방(지금)’─이렇게 말이다. ‘시방’의 뜻이 어려워서 그러지는 않았을 거다. 호남 사투리로 오인한 제작진의 ‘과잉 친절’이 아니었을까 싶다. (표준어권의 젊은층이) 흔히 쓰지 않기에, 또는 빈번히 들으면서도 어감이 낯설게 여겨져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시방時方은 ‘시방 한 말은 진담이야.’, ‘떠납시다, 시방!’처럼 쓰는, ‘지금’과 같은 뜻의 엄연한 표준어이다. 이처럼 표준어인데 그렇지 않은 표현으로 오해하기 쉬운 보기 몇 개를 꼽아보자. -(<시골말과 서울말>, 101쪽)
어머, ‘조개껍질’ 예쁘다 …. 조개껍질이 예쁘다? 글쎄, 이 또한 그냥 넘길 수 없는 표현이다. 뭐가 문제? ‘껍질’이 걸린다. ‘아나고 회’ 때문에 ‘밝히는 여자’가 되어버린 신부는 ‘껍질’과 ‘껍데기’도 구별 못 해 신랑에게 또 한 소리 들어야 했다. 조개의 거죽은 ‘껍데기’, 귤이나 사과의 거죽은 ‘껍질’이다. 딱딱한 건 ‘껍데기’, 물렁한 건 ‘껍질’로 이해하면 된다. -(<‘하고 회’ 먹자>, 149쪽)
안타까운 일이다. 코앞의 잘못을 알면서도 ‘법’에 얽매여 바로잡지 못하니까 말이다. 그래도 방송과 신문은 할 수 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1990년대 문화방송 신입 사원 교육 때부터 나는 이렇게 주장했다─그냥 ‘징역 3개월’, ‘집행유예 10개월’이라 하면 된다. 그래서일까. ‘징역 3개월, 집행유예 10개월’은 문화방송에서만 듣고 볼 수 있는 보도가 아니다. 다른 매체에서도 접할 수 있는 법조 기사에서도 등장하는 표현이니까. 판사에게는 법전이 ‘준거의 틀’이 되지만 방송, 언론인에게는 ‘옳은 것’이 ‘바른 잣대’가 되는 것이다. -(<6월에 감옥으로 오세요, ‘징역 유월’>, 177쪽)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에 편지를 띄운 적이 있다. 내용의 대강은 ‘조직위원회 이름을 평창겨울올림픽 조직위원회, 이렇게 공식화하면 어떨까’였다. 회신은 없었고, 결과는 아시는 것처럼 ‘동계~’로 정리되었다. (…) 2022년 베이징에서 겨울 올림픽이 열렸다. 당시 문화방송은 중계방송과 특집 프로그램에서 ‘동계~’를 버리고 ‘베이징겨울올림픽’으로 통일해 사용했다. 그 제안을 필자가 했다고 굳이 밝히지 않으련다. 제안보다 중요한 것은 의사결정 아닌가. -(<동계 올림픽, 겨울 올림픽>, 246쪽)
5. 지은이의 말
아나운서가 되어 방송 일을 시작하면서 선배들에게 배우고 말과 글에 관련한 책을 닥치는 대로 읽으며 ‘방송 언어’를 익혔다. 천 권까지는 모르겠지만 줄잡아 수백 권을 훑었다. 1945년 광복,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끊임없이 이어진 ‘일본식 표현 순화’의 뿌리를 캐려고 일본어를 배웠다. 언어와 뗄 수 없는 역사와 문화 전반에도 자연스럽게 배움의 손길을 뻗었다. 그렇게 책 속의 내용을 익히며 ‘원칙주의’를 지키려 했다. 제 나름 ‘내공 쌓였다’ 여길 즈음 ‘나만 알면 무슨 소용’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방송 언어와 우리말의 궁금함과 헷갈림을 내게 묻는 선배들이 많아질 무렵이었다. 독학이나마 익히고 알게 된 우리말 이모저모를 엮어 ‘16절 갱지’에 ‘우리말 나들이’를 찍어냈다. 1993년의 일이다. 4년 뒤 아나운서실 안팎의 거스름을 딛고 TV 프로그램 <우리말 나들이>를 만들었다. (…) 어릴 때부터 시작해 어른이 되어 아나운서가 되고 ‘우리말 나들이’를 만들며 규정에 굳건히 발 디디며 말글에 천착하던 삼십 대 중반까지 그랬다. 지금도 그렇다?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규범과 원칙과 품격을 지향하되 일상의 쓰임과 신조어의 발랄함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 미시만 보고 거시를 놓치며 살았다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개개의 단어와 발음보다 규범에 어긋나더라도 정보를 잘 엮어 전달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는 통찰을 얻게 된 것이다. 이오덕, 이수열, 정재도 선생처럼 국어순화에 앞장선 선학들의 주옥같은 저서에서 얻은 배움은 어느 순간부터 ‘진리’가 아니라 ‘일리’로 참고하게 되었다. -(<책머리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