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도서목록

숲의 상형문자

시리즈 b판시선 019
출판일 2017-11-20
저역편자 고명섭
출판사 도서출판 b
가격 9,000
도서규격 167쪽 | 125 X 194mm
ISBN 979-11-87036-29-6
구매처

15113413362327A_300.jpg

 

 

■  이 책을 발행하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명섭이 당대 최고의 서평가 중의 한 사람이자 인문학 저술가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소설이나 시를 쓴다는 사실은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이번에 고명섭이 펴낸 시집 <숲의 상형문자>는 그의 첫 시집 <황혼녘 햇살에 빛나는 구렁이알을 삼키다>(2000)에 이은 두 번째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는 역사의 흐름을 따라가며 철학자와 문학자의 삶을 다루는 50편의 시가 묶여있다. 시집 전체를 떠받치는 개개의 시편들은 대부분 특정 인물들에 대한 평전 형식을 띠고 있는데, 사상보다는 그들의 삶이 전면에 부각되면서 그러한 삶의 국면들을 통해 사상의 기원을 떠올릴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사상가와 예술가들의 삶을 이야기 하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마도 고명섭 시인은 자신이 천착한 사상가와 예술가가 처한 삶의 한 국면에서 바로 자기 자신의 삶을 읽은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여느 시인들처럼 제 이야기를 정색하고 늘어놓는 것이 쑥스러운 이 인문학자는 그가 섭렵한 사상가와 예술가들의 에피소드에 감정이입을 하여 슬쩍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지적 편력을 시적 방식을 통해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집은 시로 쓴 지성사 혹은 시인의 성장사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지적 편력의 내력을 들려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견고한 체계를 갖춰야만 그 위력이 발휘된다고 할 수 있는데, 고명섭 시인은 이 시집에서 명확히 체계적 방법론을 따르고 있다. 먼저 각 시편에는 1에서 50까지 일련번호가 붙어 있는데 순서대로 구도자의 지적 편력을 따라가는 지도의 체계이다. 그리고 권두의 시편들에서는 편력의 동기, 각오, 방법이 밝혀져 있다. 편력은 고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신화를 만나고, 고대철학에서 근대철학까지의 대륙을 횡단하고, 다시 현대철학과 예술과 종교의 대양을 누빈다. 그런 후 마지막으로 순례를 마치고 집으로 귀환함으로써 대미를 장식한다. 이를 서사구조로 말하자면 “시간의 악력에 부서지지 않는 기억의 건축술”(「1_기억의 건축술」)을 익히고, “숲의 상형문자”(「3_상형문자」)를 해독하기 위해, “그래도 방황은 하지 말아야지”(「6_시든 꽃 미음」)라고 말하는 어미를 뒤로 한 채 먼 길을 떠난 이가, 인류가 일궈낸 정신의 정수를 편력/섭렵하고, 이제는 “먼 곳을 돌아 집에 온 탕자”(50_쑥부쟁이 꽃)처럼 고향에 돌아와 창문을 열고 아침을 맞는 형상인 것이다.

 

이러한 구성을 지닌 <숲의 상형문자>는 불쑥 아무데나 펼쳐 읽기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인의 안내에 따라 읽어야만 할 시집이라 할 수 있다. 만약 그렇게만 한다면 독자들은 고명섭이라는 한 지식인 내부를 비록 수사적으로나마 들여다보는 내밀한 즐거움과 함께 독자 자신이 거대한 인류의 지성사가 남긴 상형문자를 해독하기 위해 떠나는 오디세이아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지은이 소개

 

고명섭

 

시집 <황혼녘 햇살에 빛나는 구렁이알을 삼키다>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집을 낸 뒤 10여 년 동안 마음의 두엄에 풀과 지푸라기와 생각의 뿌리들이 쌓여 썩었다. 거기서 발효하며 피어오르는 시상들을 잡아채 엮은 것이 <숲의 상형문자>다. 소설 <미궁-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를 냈으며, <니체 극장>, <즐거운 지식>, <광기와 천재>, <담론의 발견>, <지식의 발견>과 같은 책들을 썼다.

 

■  차례

 

시인의 말 5

 

1_기억의 건축술 11

2_지하에서 12

3_상형문자 14

4_우는 어미 16

5_양가죽 여자 18

6_시든 꽃 미음 21

7_바다의 숲 22

8_갈릴레오, 코기토 24

9_길가메시 27

10_에흐예 아셰르 에흐예 31

11_존재와 무 34

12_세이렌, 스핑크스 37

13_곰 사냥꾼 41

14_이데아, 빛 44

15_히포의 사제 47

16_탁발 토마스 49

17_무소유 52

18_토굴에서 54

19_독학자 56

20_영원회귀 60

21_별들의 순수이성 64

22_정신 현상학 67

23_마음의 폴리스 71

24_산탄드레아의 실업자 74

25_로베스피에르, 당통 77

26_이오시프 주가시빌리 81

27_아돌프 지크프리트 84

28_갈대꽃 머리 88

29_숲의 사제 90

30_헛간의 비트겐슈타인 94

31_호텔 노마드 98

32_몰래 쓴 편지 101

33_압생트 104

34_런던의 원숭이 106

35_게걸스러운 펜 108

36_의지와 몽상의 오선지 111

37_풍경 114

38_표도르 미하일로비치 피티아 116

39_요나 도서관 118

40_모가지 120

41_나쁜 피 122

42_늦은 선물 125

43_뱀 몰이 128

44_황홀한 밤 133

45_그림자극 136

46_기도 139

47_베단타 나무 141

48_텅 빈 얼 143

49_비슈누 145

50_쑥부쟁이 꽃 148

 

해설ㅣ 신형철 151

 

■  본문에서

 

<3_상형문자>

 

무너진 집, 돌담 옆에 주둥이를 잃어버린 항아리

물기 없는 흙바닥의 아가미처럼 헐떡거리는 아가리

병조각 널린 길에서 발가벗고 뒹구는 몸뚱이

벌레 먹은 세월이 엉겨 썩어 들어갈 때

책의 문을 열면 굴뚝새 한 마리 푸드덕 날아갔다

책 속으로 난 길은 하구의 강줄기같이 흩어지고

숲은 깊어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나뭇가지 사이 잎사귀를 뚫고 햇살 몇 가닥 들어와

큰 나무뿌리의 이끼에 맺힌 빗물의 잠을 깨웠다

이 숲 어디엔가 손길 닿지 않은 유적 묻혀 있지 않을까

숲길 저 안쪽 샘물 옆에서 아니면 바위 그늘에서

숲을 지키는 정령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숲의 고래가 헤엄쳐 흘러 어디로 가는지

숲이 숨을 쉴 때 토해내는 안개의 양이 얼마인지

새벽이 숲을 깨울 때 무슨 밀어를 속삭이는지

숲을 지키는 사람을 만나 물어볼 수 있지 않을까

첫 열매를 떨어뜨린 새는 어디에서 왔는지

왜 열매는 흙에 뿌리를 내리고 손바닥을

꺼내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리는지

도대체 뿌리는 어디까지 파고들어야 마음을 놓는지

숲에서 버섯 따는 사람을 만나면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책 속으로 들어가 책과 책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면

멋대로 난 풀잎의 혓바닥이 종아리를 스치고

사금파리들이 발가락에서 피를 핥았다

손전등을 들고 더듬어보는 숲의 상형문자

입 꼭 다문 문자들이 눈을 깜빡거렸다

 

* * *

 

<25_로베스피에르, 당통>

 

고양이를 닮은 남자는 성량 큰 사람들 뒤에서 침묵을 지켰다

세상이 뒤집히자 정육점 앞치마를 두른 여자들이 감옥으로 몰려갔다

머리통을 잘라내 창에 꽂고 도시 한가운데로 돌아왔다

물정 모르는 폭군이 왕궁 밖으로 도망가다 붙잡혔다

왕궁의 안주인은 버르장머리 없는 말을 했다

꼿꼿이 서 있다 왕을 따라 목이 잘렸다

폭동이 폭동을 몰고 왔다

인플레이션이 먹을 것들을 띄워 올렸다

군중은 손을 뻗쳤으나 하늘로 솟는 빵을 잡지 못했다

굶주림의 시궁쥐가 하수구에서 튀어나와 도시의 골목을 점령했다

나라 밖 군대가 국경을 에워싸고 군가를 불렀다

고양이를 닮은 남자는 가난한 사람들을 찬양했다

도살용 칼을 든 여자들을 덕 있는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옷소매가 닳아 해진 덕들이 모여들어

고양이를 닮은 남자에게 함성을 질렀다

남자는 책상 위에 책 한 권을 놓고 읽었다

하숙집 2층 방 베갯머리에서도 읽고

개를 끌고 산책하다가 벤치에 앉아서도 읽었다

낡은 질서가 무너졌으니 신과 인간 사이에,

인간과 인간 사이에 새로운 계약이 놓여야 한다고

책을 읽은 남자는 엄숙하게 말했다

누런 머리털을 창백한 가발로 가리고서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자라는 덕의 힘을 받들었다

새로 지은 집을 따뜻하게 데우려면

탐욕, 사치, 불의를 쓸어 담아

덕의 아궁이에 처넣어야 한단 말이야

창백한 고양이는 군중이 주는 덕의 기운을 먹고 자랐다

덕의 힘으로 사나워진 고양이는 죄로 물든 짐승들을 심판했다

널따란 책상에 앉아 아궁이로 보낼 배덕자를 찍어냈다

오늘의 적들이 오라를 지고 어제의 친구들이 사슬에 묶였다

멧돼지를 닮은 사내가 사나운 고양이를 닮은 친구에게 말했다

깨끗한 옷을 고집하다 보면 피를 뒤집어쓰게 돼

병균이 한 점도 없는 세상을 만들려다가

세상 자체를 박멸하게 된다니까

그때는 덕이라는 것도 남아나지 않게 되지

넌 순수한 것만 사랑하다가 눈빛이 변했어

폭군 없는 세상을 세우려다가 폭군이 되고 말았어

사나운 고양이를 닮은 남자는 멧돼지를 닮은 친구의 목을 잘랐다

덕을 믿지 않는 놈은 가난한 사람들의 적이야

적을 받아줄 만큼 새 나라는 넉넉하지 않아

허술한 지붕에서 기왓장이 떨어지듯

모가지들이 댕강댕강 잘려 떨어졌다

눈에 핏발이 선 고양이는 배신의 냄새가 나는 짐승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들여 공포의 제단에 올렸다

배어든 냄새건 묻혀온 냄새건 냄새가 난다는 것이 죄였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시궁쥐와 들쥐들이 한밤중에 만났다

날이 밝자 들짐승과 날짐승 수백 마리가 고양이를 에워쌌다

발톱을 세운 고양이는 의사당 연단에 올라

발뒤꿈치를 들고 작은 목에 힘을 주었다

시궁쥐와 들쥐가 세상을 다시 하수구로 만들려 한다고 외쳤다

짐승들의 함성이 고양이의 하얗게 질린 목소리를 눌렀다

배고파 지친 군중은 덕의 변호인을 못 본 체했다

늘어진 고양이 목에서 피가 쏟아졌다

들쥐와 시궁쥐들이 피에 주둥이를 박았다

 

■  시인의 말

 

언젠가 횔덜린은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찾는 것, 그것은 가까이 있고 벌써 그대와 만나고 있다.”

하이데거는 횔덜린을 생각하며 또 이렇게 말했다.

“오랫동안 떠도는 사람으로서

떠돎의 무거운 짐을 어깨에 메고 근원으로 건너오는 자,

찾아야 할 것을 찾는 자로서 귀환하는 자만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돌아갈 곳이 없다.

돌아갈 곳이 없으니 괴롭더라도

돌아갈 곳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시는 짓는 것이 아니라 날아오는 것이다.

어느 마음에 파묻혀 있다가 가끔 싹을 틔운다.

꽃망울이 진물을 흘리며 한꺼번에 터지기도 한다.

고목의 검버섯 같은 시에도 기쁨이 있을까.

기쁨까지는 바라지 않고 다만 물기가 마르지 않기를…….

 

■  추천사

 

<숲의 상형문자>는 이성의 방언 내지는 로고스의 사생활을 노래하고 있다. 시인은 저 이성의 언어들을 시제 불명의 거처로 서슴없이 불러내 주술로 읊조린다. 이 시집이 인류가 쌓아온 지성과 지성사를 신화적 언어로 재구성하고 있다는 뜻이다. 스핑크스에게 쟁기를 지워 언어와 상상력의 들판에서 밭갈이를 하게끔 하는 일 따위도 무시로 출몰하고 있다.

 

 진작부터 고명섭에게 오면 니체는 끓는 강물과 같고 이데아는 도리어 도깨비불을 품고 배회하곤 했다. 그는 현실과 지성의 세계 사이에서 싸우면서 황홀하게 충전되어 왔던 시인이다. <숲의 상형문자>에 이르러 한국어는 뜨거운 운율을 품은 지성의 상형문자를 얻게 되었다. 모든 번뇌는 액체이고, 사유와 고뇌가 후비고 간 자리에는 상형이 남는다. 이것은 그 액체로 찍어 쓴 비의 가득 찬 기록이다. -서해성(소설가)


  1. 50년 후의 시인

    김수영과 21세기

    최원식, 유중하, 박수연, 김응교, 이영준, 유성호, 노혜경, 임동확, 김진희, 조강석

    2019-02-28

    양장본 | 375쪽

    24,000

    010

    Read More
  2. 예술철학

    바리에테신서 24

    노엘 캐럴 지음ㅣ이윤일 옮김

    2019-02-27

    양장본 | 432쪽 | 152x224mm

    26,000

    024

    Read More
  3. 거미남

    아케치 고고로 사건수첩 3

    에도가와 란포 지음ㅣ이종은 옮김

    2019-01-31

    336쪽 | 130 X 190mm

    12,000

    03

    Read More
  4. 밤의 노래

    이학성

    2019-01-28

    양장본ㅣ 160쪽ㅣ150x218mm

    15,000

    017

    Read More
  5. 헤겔의 이성.국가.역사

    헤겔총서 8

    곤자 다케시 지음ㅣ이신철 옮김

    2019-01-25

    반양장본ㅣ152X 224mmㅣ432쪽

    24,000

    08

    Read More
  6. 아름다움과 정의로움에 대하여

    바리에테신서 23

    일레인 스캐리 지음ㅣ이성민 옮김

    2019-01-15

    반양장본ㅣ126X210mmㅣ160쪽

    12,000

    023

    Read More
  7. 규방철학

    b판고전 15

    사드 지음ㅣ이충훈 옮김

    2018-12-13

    반양장본 | 464쪽 | 130 X 190mm

    15,000

    015

    Read More
  8. 천국의 이정표

    이형구

    2018-10-30

    양장본 l 152x224mmㅣ247쪽

    12,000

    005

    Read More
  9. 서정춘이라는 시인

    하종오+조기조 엮음

    2018-10-29

    반양장 | 184쪽 | 170 X 224mm

    15,000

    016

    Read More
  10. 만년

    다자이 오사무 전집 1

    다자이 오사무 지음ㅣ정수윤 옮김

    2018-10-25

    144 X 210 | 양장본 | 535쪽

    22,000

    01

    Read More
  11. 헤겔의 신화와 전설

    헤겔총서 7

    The Hegel Myths and Legends(1996)

    존 스튜어트 엮음ㅣ신재성 옮김

    2018-10-23

    반양장본 | 540쪽 | 152 X 224mm

    26,000

    07

    Read More
  12. 신강화학파 33인

    b판시선 028

    하종오

    2018-09-20

    175쪽 | 124 X 194mm

    10,000

    028

    Read More
  13. D자카 살인사건

    아케치 고고로 사건수첩 1

    에도가와 란포 지음ㅣ이종은 옮김

    2018-09-15

    237쪽 | 130 X 190mm

    12,000

    01

    Read More
  14. 난쟁이

    아케치 고고로 사건수첩 2

    에도가와 란포 지음ㅣ이종은 옮김

    2018-09-15

    287쪽 | 130 X 190mm

    12,000

    02

    Read More
  15. 슬픔아 놀자

    b판시선 027

    최기종

    2018-09-01

    135쪽 | 124 X 194mm

    10,000

    027

    Read More
  16. 자연의 비너스

    b판고전 14

    피에르 루이 모로 드 모페르튀 지음ㅣ이충훈 옮김

    2018-08-17

    반양장본 | 238쪽 | 130 X 190mm

    12,000

    014

    Read More
  17. 인간 실격

    人間失格(1948)

    다자이 오사무 지음ㅣ정수윤 옮김

    2018-08-01

    151쪽 | 120 X 180mm

    9,000

    01

    Read More
  18. 회색빛 베어지다

    b판시선 026

    박선욱

    2018-07-25

    151쪽 | 124 X 194mm

    10,000

    026

    Read More
  19. 현상학과 해석학

    마음학총서 6

    닛타 요시히로 지음ㅣ박인성 옮김

    2018-07-20

    양장본 | 333쪽 | 152 X 224mm

    24,000

    06

    Read More
  20. 꽃꿈을 꾸다

    b판시선 025

    이권

    2018-06-20

    149쪽 | 124 X 194mm

    10,000

    025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 16 Next
/ 16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