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즉시공(色卽是空)”
―인식 대상은 연기적인 것이다.
1. 이 책의 소개
중관학자 신상환 박사의 <중론으로 읽는 반야심경>을 출간했다. <반야심경>은 불교에서 가장 자주 많이 만나는 경인데, 줄줄 암송하는 사람은 적지 않지만 정작 그 뜻을 요령 있게 풀고 정리하여 들려주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불경은 자세히 풀이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런 방법밖에 없으니 다시 한번 그 깊은 뜻을 이 책을 통해서 알고자 시도하는 것은 어떨까.
<반야심경>은 한마디로 ‘지혜의 정수를 담은 경’이라는 뜻이다. ‘쌓고 부수는 작업’인 불교 교학의 특징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즉 오온ㆍ십팔계ㆍ사성제ㆍ십이연기 등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그렇지 않다!’라는 데까지 나가지 않으면, ‘괴로움의 바다’를 건너 피안으로 갈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경이다. 스스로 ‘부처님의 자식’인 ‘불자(佛子)’라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이 책을 통해 불교적으로 생각하고 불교적으로 살지 않는 게 문제라는 점만 자각해도 의미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창문 밖’에서 불교를 들여다보는 이들도 불교의 바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대승불교권의 불자들에게 독송용으로 널리 알려진 <반야심경>을 공사상을 논리적으로 설명한 <중론>의 논리에 따라 해제한 것이다. 특히, 산스끄리뜨어 원문을 중심으로, 티벳역뿐만 아니라 한역 7종을 교차 검색한 내용을 담고 있다. 불교 인식론의 근간인 오온 십팔계 등의 불교 전문 개념을 현대적 입장에서 재해석하며 반야경이 추구하는 비판의 논리가 곧 삶의 괴로움을 여의기 위한 것임을 이 책에서는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산스끄리뜨어 원문 직역하며 해제했다는 점이다.
둘째, 티벳역과 한역 7종을 대조하며, 그 의미를 명확히 밝혔다는 점이다.
셋째, 반야부의 공사상이 등장한 이유를 역사적인 맥락에서 살펴보았다는 점이다.
2. 지은이 소개
■ 신상환
1968년 전남 광양에서 태어나 아주대학교 환경공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학생 운동 후 인도로 떠나 타고르대학으로 알려진 비스바바라띠대학에서 티벳어, 산스끄리뜨어 등의 언어를 공부하였고, 캘커타대학에서 용수의 중관 사상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비스바바라띠대학의 인도-티벳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티벳 스님 등에게 중관사상을 가르쳤다. 현재 곡성 지산재에서 중관학당을 열어 중관사상 선양을 위한 역경과 강의 등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용수 보살의 중관사상에 대한 <용수의 사유>, 인도 20년 생활과 여행의 기록인 <인도수업>, 대표적인 역서로는 용수 보살의 6대 저작인 <중론>, <회쟁론> 등의 모음인 <중관이취육론>이 있다.
3. 차례
ㅣ책머리에ㅣ 7
반야심경―산스끄리뜨어 Devanagari본 14
반야심경―산스크리뜨어 직역 18
‘중론’으로 읽는 반야심경 해제
들어가며 23
반야심경의 구조: 액자 안의 액자 31
반야심경의 도입부 42
반야심경의 주요 내용 63
나오며 179
ㅣ부록ㅣ 183
1.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7역譯 비교 185
2. 반야부의 등장과 원시 대승불교 234
3. 반야심경 본들 263
3-1. 반야심경―산스끄리뜨어 저본 263
3-2. 반야심경―산스끄리뜨어 Unicode본 266
3-3. 반야심경―산스끄리뜨어 HK(Harvard-Kyoto)본 269
3-4. 한글음 산스끄리뜨어 반야심경 273
3-5. 현장의 산스끄리뜨어 반야심경 한문 음차 281
3-6. 구 조계종단 반야심경 한글역 291
3-7. 현 조계종단 반야심경 한글역 294
ㅣ찾아보기ㅣ 297
4. 책 속에서
에밤 마야 슈르땀!
경(經)과 경이 아닌 것은 첫 문장을 ‘이와 같이’를 뜻하는 ‘에밤’으로 시작하느냐와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나눠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역의 여시아문(如是我聞)을 우리말로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로 번역한다. 피동(被動) 표현을 자제하고 능동(能動)으로 표현하는 것이 대세라,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라고 옮기는 것이 오늘날에는 ‘좋은 글’이다. 그렇지만 산스끄리뜨어로 ‘나(I)’를 뜻하는 ‘아스마드(asmad)’의 주격인 ‘아함(aham)’ 대신에 도구격인 ‘마야(mayā)’를 쓴 것은 집경자의 의도인 부처님의 말씀을 높이고 자기 자신을 낮추기 위한 장치다. 그리고 이어지는 ‘들린 것’인 ‘슈르땀(śrutam)’은 ‘이와 같이’를 뜻하는 불변사인 ‘에밤(evaṃ)’과 같은 격을 취하고 있다. 즉, 자기 자신을 최대한 낮추고 피동적인 존재로 만들려고 일부러 쓴 것이다. (본문 44~45쪽)
‘오온조차도 공하다.’라는 언급이 뜻하는 바는 오온적 존재인, 즉 ‘인식 대상(色)을 파악하는 식(識)을 가진 존재’인 일체 유정(有情)이 연기적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의 의미만이라도 제대로 파악하면, 그 안에 들어 있는 인식 주체의 연기성은 자연스럽게 강조된다. (본문 58쪽)
부처님의 반열반 이후 등장한 구사론자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세세하게 분석하여 불교를 복잡 난해한 것으로 만들었다면, 그에 대한 안티 테제로 등장한 반야부는 ‘그런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미 ‘연기’라는 더럽혀진 불판을 ‘공’이라는 새 불판으로 바꾸었다. (본문 68쪽)
‘깨달음의 길’은 조건의 변화를 위한 실천행인 자애와 연민과 떨어질 수 없다. 이와 같은 이어짐 속에서 지혜를 함양할 수밖에 없음을 교학적으로 가다듬은 것이 곧 대승의 교학이고, 이 가운데 그 핵심을 이루는 ‘지혜의 정수’는 어떤 것도 고정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만 제대로 파악하면 교학의 핵심을 부정하는 반야심경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 181쪽)
5. 옮긴이의 말
법회 때마다 한글『반야심경』을 독송해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그렇지만 이 경이 ‘지혜의 정수를 담은 경’임을 알고 일체 무자성을 강조하는 삶을 살면 붓다의 가르침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삶의 변화를 위한 불교, 나와 남이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을 강조하는 것이 대승불교이고, 그 출발을 연 것이 반야부 경론이니, 그 핵심을 담고 있는 이 책의 내용을 숙지하여 삶의 이정표로 삼기를 바란다.
“색즉시공(色卽是空)”
―인식 대상은 연기적인 것이다.
한마디로 반야심경은 ‘지혜의 정수를 담은 경’이라는 뜻이다. ‘쌓고 부수는 작업’인 불교 교학의 특징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즉 오온ㆍ십팔계ㆍ사성제ㆍ십이연기 등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그렇지 않다!’라는 데까지 나가지 않으면, ‘괴로움의 바다’를 건너 피안으로 갈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경이다. 스스로 ‘부처님의 자식’인 ‘불자(佛子)’라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이 책을 통해 불교적으로 생각하고 불교적으로 살지 않는 게 문제라는 점만 자각해도 의미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창문 밖’에서 불교를 들여다보는 이들도 불교의 바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