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드로를 뱅센 감옥으로 데려간 바로 그 책”
1. 이 책을 발행하며
도서출판 b의 <b판 고전> 시리즈 24권은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 1713-1784)의 초기 저작 <맹인에 대한 편지 Lettre sur les aveugles>를 완역한 것이다. 아울러 이 책에서 논의된 데카르트, 볼테르, 콩디야크의 저작의 해당 부분을 일부 번역하여 부록으로 실어 독자의 이해를 돕게 했다.
디드로가 내놓은 최초의 저작 <철학 단상 Les pensées philosophiques>(1745)은 당대 급진적인 사상가들을 만족시켰다. 당시 유행하던 아포리즘 형식에 이신론과 무신론의 논의를 아슬아슬하게 제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저작으로 인해 디드로는 경찰 당국에 의해 ‘위험 인물’ 판정의 대상이 되고 감시받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백과사전>의 편집자가 되어 첫 권을 준비 중에 있던 디드로는 공동 편집자였던 달랑베르와 제1권(1751)의 출간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제1권 출판에 앞서 그는 <맹인에 대한 편지>(1749)를 출간했다. 1753년에 쓴 <농아에 대한 편지>를 참조하자면 고된 편집과 집필의 노력에서 잠시 쉴 시간을 찾았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보통 많은 연구자들은 <맹인에 대한 편지>를 그가 경멸했던 왕립과학아카데미의 거두 레오뮈르가 한 소녀의 백내장 수술 후 질문을 할 기회를 자신에게 주지 않자 이를 조롱하기 위해 쓴 것으로 흔히 생각하곤 한다. 그렇지만 이 책을 레오뮈르에 대한 불만의 결과로만 읽기에는 사실 너무 복잡하며, 더 큰 논의를, 행간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소 숨기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맹인에 대한 편지>의 마지막 부분은 17세기 말 로크에게 “촉각으로 구체와 입방체를 구분할 줄 알게 되었던 선천적 맹인이 만일 시력을 얻게 된다면 그는 ‘즉시’ 어느 것이 구체이고 어느 것이 입방체인지 구분할 수 있는지” 물었던 몰리뉴의 문제에 전적으로 할애되어 있다. 만일 이 책을 뒤쪽부터 읽는다면 결국 디드로의 본 저작은 물리뉴의 문제의 재해석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시각적 경험을 갖지 못한 선천적 맹인은 설령 그가 이용할 수 있었던 다른 감각을 통해 대상에 대한 일부 지식을 얻더라도 그가 결여했던 감각 경험에는 즉시 이를 수 없다는 경험주의의 입장과, 외부 대상의 감각 정보의 수용과 해석은 결국 ‘언어적 해석’, 즉 대상과 관념을 잇는 자의적인 기호의 해석과 교환 과정을 거치게 되므로 선천적 맹인이라고 할지라도 그가 누리지 못했던 감각을 회복했을 때 두 도형을 구분할 수 있다고 본 합리주의의 입장을 맞세우고 있다.
디드로의 답변은 결여된 감각을 회복한 누구라도 두 도형을 바로 구분할 수 있으리라고는 말할 수 없으며, 결여된 감각을 갖더라도 그가 누리는 다른 감각들을 통해 그가 갖지 못한 감각을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탁월한 이들이 적지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으로 귀결한다. 그러므로 몰리뉴의 문제를 새로이 해석한 디드로의 대답은 맹인의 지성과 감수성, 교육의 상태 등에 따라 여러 가지 상이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렇게 말할 때 디드로는 로크와 버클리의 논의보다는 데카르트의 광학에 더욱 기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디드로는 평생 어떤 한 입장을 배타적으로 옹호하지 않았다. 일견 대립되어 보이는 논쟁들에 뛰어들어 무작정 한 가지 입장을 지지하는 일은 자신에게도 학문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양쪽 논의의 장점과 단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이를 종합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학문의 진보이며, 눈이 있으되 진리를 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올바른 지식을 마련해 주게 된다. 그러나 첨예하게 대립하는 논쟁에 뛰어들었을 때 한 입장을 배타적으로 지지하지 않을 경우, 그는 양쪽 모두에게 위험한 존재로 비치게 된다. <백과사전> 1권의 출간을 앞둔 상황에서 <맹인에 대한 편지>가 결국 디드로를 뱅센 감옥으로 데려간 까닭이 여기 있다.
2. 지은이 소개
■ 드니 드디로 (Denis Diderot, 1713-1784)
프랑스 랑그르 출신의 문인, 철학자, 극작가, 소설가, 미술평론가. 과학 아카데미 회원이었던 수학자 달랑베르와 함께 방대한 분량의 백과사전을 편찬했다. 무신론적 유물론자로서 당대의 낡은 철학 사상과 아카데미즘에 반기를 들고 문학, 철학, 예술 전반에 걸쳐 혁신적인 이론을 주장했다. <달랑베르의 꿈>과 같은 철학서뿐 아니라, <수녀>, <라모의 조카>, <운명론자 자크> 등과 같은 소설, 미술평론집 <살롱>, 그리고 <사생아>, <가장> 등과 같은 연극 작품을 남겼다.
■ 이충훈
서강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을 공부했다. 프랑스 파리 제4대학에서 <단순성과 구성: 루소와 디드로의 언어와 음악론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프랑스학과 부교수이다. 디드로의 <미의 기원과 본성>, <백과사전>, <듣고 말하는 사람들을 위한 농아에 대한 편지>, <자연의 해석에 대한 단상>, 라 메트리의 <인간기계론/인간식물론>, 장 스타로뱅스키의 <장 자크 루소. 투명성과 장애물>, <자유의 발명 1700~1789/1789 이성의 상징>, 사드의 <규방철학>, 모페르튀의 <자연의 비너스>, 장 자크 루소의 <정치경제론ㆍ사회계약론 초고>, 필립 피넬의 <정신이상 혹은 조광증의 의학철학 논고> 등을 번역했고, 저서로 <자연의 위반에서 자연의 유희로> 등이 있다.
3. 차례
눈이 보이는 사람들을 위한 맹인에 대한 편지 7
<맹인에 대한 편지>의 추가 145
|부록| 데카르트, <굴절광학>, 첫 번째 담화 167
여섯 번째 담화 171
볼테르, <뉴턴 철학의 기초>, 2부 7장 175
콩디야크, <인간지식기원론>, 1부 6절 189
앙투안 루이, <백과사전>의 ‘백내장’ 항목(발췌) 211
|옮긴이 해제| 217
4. 옮긴이의 말
데카르트는 선천적 맹인이 두 개의 지팡이를 교차시켜 마주치는 외부의 대상들을 더듬는 행위를 통해 자기 앞의 대상들을 자신의 방식으로 촉지하고, 이 경험으로 획득한 지식을 통해 판단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하면 촉각을 통해 일시적으로든 항구적으로든 사용이 제한된 시각 작용이 ‘완전히’ 대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지팡이 하나가 대상에 접촉하면서 발생시킨 자극이 그가 함께 들고 있는 다른 지팡이로 이전되므로, 서로 교차하여 외부 대상을 촉지하고, 그 자극을 지각하는 두 지팡이는 여전히 대상과 감각기관 사이의 기하학적 관계를 전제한다. 데카르트는 빛을 매개로 외부 대상이 우리 눈 가장 안쪽에 자리 잡은 망막에 2차원적으로 이미지를 투사하는 과정을 교차된 두 개의 지팡이의 이미지로 나타냈다. 그러므로 데카르트의 맹인이 든 지팡이는 외부에서 만나는 대상이, 공기 혹은 투명한 물질을 가로질러 전파되는 빛을 매개로 감각기관에 전달되어 지각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정확한 비유이다.
그런 의미에서 데카르트가 선천적 맹인들이 ‘손으로 본다’라고 지적한 것은 단순한 비유로 축소될 수 없다. 신체와 영혼을 엄밀하게 구분하는 데카르트는 시각 작용의 두 단계를 구분하고 있으며, 외부 대상의 이미지가 우리 눈 가장 깊은 곳인 망막에 맺힐 때, 이 시각 작용은 완전히 기계적인 것으로 시각기관은 그 대상의 이미지를 수용하기는 하지만, 그것과 실제 대상의 입체적인 이미지에는 공통점이 전혀 없다. 데카르트는 시각기관에 들어온 대상의 이미지를 지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감각기관이 아니라 영혼에 부여한다. 망막에 그려진 입체감을 상실한 평면적인 이미지는 지각 주체의 인지적인 활동을 통해서만 지식의 대상이 된다. 데카르트가 이해하는 시각 작용에는 외부 대상의 이미지가 동공을 통해 망막에 수용되도록 하는 물질적인 눈目 외에도, 그 이미지를 알아차리고, 판단하고, 재구성하는 다른 눈이 있는 것이다. 파올로 퀸틸리의 표현에 의하면 이는 “두뇌 속의 다른 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데카르트에게 시각 작용은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두 과정의 결합을 전제한다. 또한 이렇게 외부 대상의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신체적인 시각 작용은 망막에 투사된 이미지의 기계적인 자극에 불과하므로 결국 우리는 빛과 시각기관의 유무와는 무관하게 이 단계의 시각 작용에서 외부 대상을 볼 수 없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므로 데카르트에게 ‘본다’는 행위는 신체의 감각기관에 투사된 이미지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획득된 감각 정보가 두뇌에서 해석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인간이 대상과 실제적으로 아무런 공통점을 갖지 않는 인위적이고 자의적인 기호를 사용하여 관념을 전달하고 교환하는 것을 관습적인 설정이라고 한다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자연 혹은 신이 우리의 두뇌와 그 속에 자리를 둔 영혼이 외부 대상을 일종의 기호의 교환과 해독의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게끔 마련했다고 보며, 이를 자연의 설정이라고 했다. ―<옮긴이 해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