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의 소개
『라캉과 한국영화』는 국내 소장 영화이론 연구자들의 성과를 모은 책이다. 라캉의 정신분석 이론은 일찍부터 영화이론에서 수용되었지만, 최근에 지젝을 위시한 슬로베니아 학파의 공헌과 더불어, 라캉의 후기 작업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영화이론과 정신분석의 결합에 어떤 변화나 새로운 시작 같은 것이 예고되었다.『라캉과 한국영화』는 이러한 예고가 이제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인상적으로 알려주는 책이다.
첫째,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라캉주의 영화이론과 영화비평의 모범이 될 수 있는 글들로서 선별되거나 새로 씌어졌다. 서양 이론의 무분별한 수용과 적용에 대한 비판은 오늘날 상투어에 가까운 말이 되어 있다. 반면에 궁극적인 모델로서 기능할 수 있는 글들은 오히려 드물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그러한 모델들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서 엮어지게 되었다.
둘째,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라캉주의 정신분석의 개념들을 해명하고 더욱 심도있게 탐구하려는 목적에서 선별되거나 새로 씌어졌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의 제목이 이를 분명하게 알려준다. 따라서 이 책에 실린 새로운 글들을 읽을 때마다 독자들은 라캉의 중요한 개념들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 김기덕을 비롯한 한국의 주요 감독들에 의해 만들어진 최근의 중요 한국영화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 책에 실린 글들은 한국의 영화이론에 대한 직접적인 공헌들이다. 라캉주의 정신분석 이론은 제반 예술 영역들이나 사회문화적 현상들에서 매우 해명력이 높은 이론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이 책을 읽음으로써, 현대 한국영화에 대한 수준 있고 세련된 식견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이 책에 실린 글들의 저자들은, 그들의 글이 입증해주겠지만, 라캉주의 영화이론을 다룰 수 있는 최고의 저자들이다. 따라서 당분간 이 책과 동일한 유형의, 이보다 더 훌륭한 책을 발견하기는 힘들 것이다.
■ 차 례
서문: 라캉과 영화의 만남을 예비하며_김소연
1부. 라캉 / 영화 / 이론
정신분석적 영화이론의 새로운 가능성에 관하여_김소연
영화-감각을 윤리적 행위로 '반복하기_박제철
2부. 라캉 / 한국 / 영화
<밀양>: 그녀의 목에 걸린 가시_정혁현
<역도산>: '열정적 애착'과 '탈-애착' 사이에서_하승우
<해안선>, 기괴한 영웅담 혹은 자기-희생의 도착적 기만_김정선
행위로 기억하기: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와 트라우마의 반복강박_박제철
복수는 나쁜 것? 박찬욱의 복수 연작의 '주체성'에 관한 정신분석적 접근_김소연
■ 저자 소개
김소연 soh-youn@hanmail.net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 University of Kent at Canterbury 영화과 석사과정, 중앙대 영상예술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주요 논문으로는「'코리안 뉴 웨이브 영화’의 이행기적 성찰성 연구」(박사논문) 등, 역서로『영화에 관한 질문들』등, 공저서로는『매혹과 혼돈의 시대: 1950년대 한국영화』등이 있다. 현재 예일대 영화학 프로그램에서 박사후과정 연수 중이다.
김정선 Jungsunk68@hotmail.com
이화여대 영어교육과, 보스턴 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영화이론 석사과정을 졸업했으며 중앙대 영상예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주요 논문으로는「장르 개념의 영화학적 의미에 대한 이론적 고찰」, 「역사에서 신화로: <영웅>의 내러티브 전략에 대한 내재비판」등이 있으며, 공저서로는 『대중영화와 현대사회』등이 있다.
박제철 cinelettre@hanmail.net
중앙대 영상예술학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시네마틱 아트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영화-감각을 윤리적 행위로 반복하기」,「The Korean Extreme Cinema between Guilt and Shame」등이, 공역서로는『신체 없는 기관』등이 있다. 현대 비평이론에 대해 폭넓게 관심을 갖고 현대 동아시아 영화의 미학과 윤리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정혁현 keno21@chol.com
연세대 신학과, 감리교 신학대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문화이론 예술전문사과정을 수료했다. 역서로는『성서의 공유사상』,『맥주, 타이타닉, 그리스도인』,『전쟁과 선』이, 공저서로『영화가 재밌다 말씀이 새롭다』가 있다.
하승우 withche@gmail.com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문화이론 예술전문사과정을 졸업했다. 주요 논문으로는 「자본의 분할전략과 동아시아의 성: 쾌락/향유 기계의 선용은 가능한가」와 「이청준과 임권택의 만남 혹은 어긋남: 내셔널 시네마와 그 불만」 등을 썼다. 현재 런던대학교 Goldsmith College에서 "지구화 이후의 한국영화의 변형"이라는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고 있다.
■ 지은이의 책 밖의 말
라캉은 혹시 외계인은 아니었을까, 상상해볼 때가 있다. 이제 나는 영화를 꾸역꾸역 보고 있지는 않나,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하여 기다린다, 글로벌 자본주의를 돌파할 우주적 자유로움으로 영화를 향유할 수 있는 그 날을, 마침내 라캉에게 차갑게 결별을 선언해도 좋을 그 날을. -김소연
영화와 라캉주의의 만남은 연애나 결혼 같은 것이다. 처음에는 놀라운 우연으로 여겨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필연으로 다가오는 그런 관계말이다. 물론 이 관계에도 두 개의 갈림길이 있다. 서로를 더욱 풍요롭고 흥미로운 것으로 가꿔주는 길과 각자에 내재한 고유의 깊이마저도 갉아먹는 길. 누구나 그렇듯 나도 내 안에서 첫 번째 길의 만남이 이루어지길 꿈꾼다. -김정선
예전에 나는 라캉의 이론철학적, 실천철학적 측면만을 갖고 영화를 논하려고 했던 경향이 없지 않았다. 이제는, 부재하는지도 모르는 라캉의 미학이론적 측면을, 특히 영화와 관련된 그 측면을 발전시키는 일이 보다 절실해 보인다. -박제철
영화에게 묻는다. '케 보이?'
이미지들의 광휘 속에서 누군가 내게 답했다.
나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
애타게 다시 묻는다. '케 보이?' -정혁현
라캉주의가 영화연구에서 차지했던 지배적인 위상이 사라진 이후, 라캉주의는 모든 영화에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기준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극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라캉주의가 영화가 발생시키는 무수한 정동들에 이름을 붙이는 과정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면, 라캉주의와 영화연구의 절합을 모색하는 작업은 축소되거나 폐지되기는커녕 더욱더 확대되고 증폭되어야 할 것이다. -하승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