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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복종

시리즈 b판고전 19
출판일 2020-03-18
저역편자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지음ㅣ손주경 옮김
출판사 도서출판 b
가격 10,000
도서규격 반양장본 | 167쪽 | 130 X 190mm
ISBN 979-11-89898-20-5
구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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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소개

 
이 책 <자발적 복종>은 에티엔 드 라 보에시(Éitenne de La Boétie)의 Discours de la servitude volontaire(자발적 복종에 대한 논설)을 옮긴 것이다.
 
<자발적 복종>은 라 보에시의 생전에 간행되지 못했지만 총명했던 젊은 인문주의자의 지식과 사고의 엄정함을 반영한다는 사후의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모든 권력구조를 비판한다는 취지를 인정받으면서도, 바람직한 정치체제를 대안으로 제시하지 않는다는 한계를 지적받고 있는 이 책에서 내용과 의미 그리고 저자의 의도를 쉽게 파악하기는 다소간 힘들다. 제목이 “복종”과 “자발적”이라는 상호 대립하는 두 용어를 결합하고 있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작품은 단 하나의 논지를 찾아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 보에시의 자발적 복종이 폭정에 맞서 민중에게 ‘저항’을 권유하는 작품이라는 일관된 어조의 해석만 있어 왔다. 매 시대마다, 상황마다 작품의 위상과 해석을 달리해온 것이다. 16세기에는 국왕에 맞서 봉기를 촉구하는 작품으로, 18세기에는 정치권력에 대항하는 이데올로기 선언문으로, 19세기에 들어서면 라 보에시를 공화주의자라는 명칭마저 부여한다. 20세기 초반에도 라 보에시는 노동해방의 주창자,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선언자로 간주되었다. 한국에서도 2권의 번역본은 이러한 외국의 맥락을 선택했다. 폭정에 맞서 민중에게 저항을 권유하는 작품이라는 일관된 어조가 현재까지 꾸준히 이어져 왔다.
 
그러한 점은 복종의 ‘근본적 원인’을 다각도로 탐색한 이 작품에서 단 하나의 해석만을 강요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또 복종과 지배 사이의 본질적 구분을 다루지 않았다는 점에서 왜곡을 불러일으키고도 있다. 그러한 오류와 왜곡은 복종의 자발성에 대한 라 보에시의 철학적 깊이까지도 소멸시키고 말았다. 그래서 이 번역본에서는 단지 정치적으로 폭정을 전복하려는 혁명가의 날선 모습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라 보에시가 인간의 자유로운 본질에 대한 탐색을 촉구하며, 자유를 위한 지식인들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듯이 철저하게 원전의 맥락을 중심으로 작품의 기원과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했다.
 
***
 
라 보에시는 자발적 복종을 자유에 대한 의지의 결핍으로 정의하고, 자연이 부여한 인간의 타고난 미덕이 변질되고 왜곡되어 나타난 현상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자발적 복종은 자연의 이치에 어긋난다. 라 보에시는 인간은 자연성에 부합하는 것과 그것에 반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며 자유 역시 자연이 만든 산물로 본다. 자연이 인간에게 이성을 부여했다면 인간의 본성은 이미 자유를 본질적 속성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왜 민중은 이런 자연성을 쉽게 저버리고 자발적으로 복종하는가? 그것은 인간의 자유에 대한 본래적 열망이 굴종을 초래하는 문화와 정치적 맥락 속에서 거부되기 때문이며, 그 대표적인 것이 망각과 관습, 탐욕과 동의이다. 여기서 라 보에시가 복종의 이유를 인간 본원의 차원에서 발견하려는 인문주의자임이 드러난다. 그는 정치체계나 정치이론의 차원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대한 철학적이고 심리적 차원에서 자발적 복종의 근원을 찾아낸다.
 
라 보에시는 복종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자연에 의해 인간에게 부여된 속성인 우정을 통해서라고 한다. 우정은 어떤 정치 공동체의 특징을 이루는 관계이기 이전에 모든 인간 공동체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종하는 인간에게는 자연에 의해 각자가 우정으로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신의 활력, 즉 정신적 차원에서의 행동을 되찾는 것이 복종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  저자 소개
 
에티엔 드 라 보에시 (Etienne de La Boetie)
1530년 프랑스의 중서부 페리고르Perigords의 소도시 사를라Sarlat에서 태어났다. 대대로 법관들이 나온 교양있는 집안에서 자란 그는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인 탓에 삼촌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가 자신의 명저 《자발적 복종》 서설의 초고를 썼던 때는 오를레앙대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다. 이후 오를레앙대학교에서 법학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1553년 보르도의회 고등재판관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그의 나이 24세였다. 본래 이 직위에 임명될 수 있는 자격 조건은 26세. 이보다 두 살이나 어린 나이에 이 직위에 올랐던 것은, 라 보에시의 재능과 학문적 성취에 감복한 오를레앙대학교의 담당 교수들이 그를 적극 추천한 결과였다.
재판관이자 철학자였으며 29편의 시를 남긴 뛰어난 시인이기도 한 라 보에시는 33세의 이른 나이에 전염성 복통으로 요절했다. 임종 직전 그는 유언서를 작성해 자신이 쓴 모든 원고와 소장한 서적을 절친인 몽테뉴에게 상속했다. 몽테뉴는 라 보에시가 남긴 모든 원고의 발행을 시도하면서도 독재 타도를 주장하는 소책자인 《자발적 복종》만은 제외했다. 왕의 재판 권한을 대리하는 고등재판소 재판관이 쓴 독재자에 대한 격문은 왕정 질서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킬 위험을 내포하기 때문이었다. 라 보에시의 이 저서는 1574년 처음 세상의 빛을 보았고, 그가 남긴 사상은 이후 프랑스혁명과 아나키즘운동, 시민불복종운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라 보에시와 그의 절친 몽테뉴가 나눈 각별한 우정은 몽테뉴의 《수상록》 중 <우정>이라 명명된 장에 잘 묘사돼 있다. 거기서 몽테뉴는 두 사람 사이의 우정에 대한 유명한 말을 남긴다. “누군가 내게 왜 내가 그토록 라 보에시를 좋아하는지 묻는다면, 난 이렇게밖에 답할 수 없을 것 같다. 그게 바로 라 보에시니까, 그리고 그게 바로 나니까.” 지금도 파리 8구에는 몽테뉴 가街와 라 보에시 가가 맞닿아 있다. 마치 후세의 사람들이 두 사람의 각별했던 우정을 죽어서도 이어주고 싶었던 것처럼.
 
손주경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졸업. 프랑스 투르 프랑수아 라블레 대학교 박사. 저서로 《르네상스 궁정의 시인 롱사르》, 《Le masque de l’ecriture》(공저), 역서로 《프렌치 프랑스》, 《헤르메스 콤플렉스》, 《카상드르에 대한 사랑시집》 등이 있다.
최근작 : <시인, 사랑을 노래하다>,<프랑스 문학의 이해>,<낯선 시간의 매혹> … 총 17종
 
■  차례
 
자발적 복종에 대한 논설……7
 
ㅣ옮긴이 해제ㅣ 우리는 왜 자발적으로 복종하는가?……107
 
■  본문에서
 
"여러 명의 지배자를 섬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다"
 
P. 30~31
비참하고 가련한 넋 빠진 민중들이여, 고집스럽게 고통을 받으려 하고 행복에 눈을 감아버린 자들이여! 그대들이 벌어들인 가장 아름답고 가장 찬란한 수입이 눈앞에서 날아가 버리고, 그대들의 논밭이 강탈당하고, 선조들의 오래된 가구들이 들어찬 집들이 약탈당하게 방치하고 말았으니, 더 이상 가진 것이 하나도 없게 될 정도로 그렇게 그대들은 살아가고 있다. 그대들은 재산과 가족 그리고 생명의 반절만을 손에 넣게 되어도 그것을 커다란 행복으로 여기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모든 손실, 이 불행, 이 탕진은 다수의 원수들에 의해 그대에게 닥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 그것은 분명 바로 한 명의 원수에 기인하는 것이니, 그대들은 그를 지금도 그렇게 위대하게 만들고 있고, 그를 위해 그토록 용감하게 전쟁터로 나가고, 그의 영광을 위해 죽음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P. 33
더 이상 복종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라. 그러면 그대들은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를 밀어붙여 일격을 가하라고 하기보다는 더 이상 그를 지지하지 말 것을 나는 그대들에게 요구한다. 그러면 밑동이 뽑혀 제 무게에 짓눌려 무너지고야 마는 거대한 동상과도 같은 그를 그대들은 보게 될 것이다.
 
P. 69~70
폭군들은 민중을 사랑하면서도 의심하고, 민중은 자기를 속이자는 자에 대해서는 순진하다. 입 앞을 스쳐가는 별거 아닌 달콤함에 이끌려 복종에 즉각적으로 자신을 내맡기는 민중보다도 한 마리 새가 화살에 더 잘 낚이는 법이라고, 벌레를 즐겨 먹는 물고기가 낚시 바늘을 오히려 더 잽싸게 물어댄다고 생각하지는 말자. 조금만 간지럽혀주면 그들이 그렇게 즉각적으로 자신을 내맡기게 되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연극, 놀이, 익살극, 공연, 검투경기, 신기한 동물들, 동전들, 그림들 그리고 그러그러한 다른 마약들은 고대의 민중에게는 복종의 미끼였고 빼앗긴 자유의 대가였으며 폭정의 도구였다. 고대의 폭군들은 이것들을 수단으로 삼아서 이용했고 이것들로 유혹하여 백성들에게 굴레를 채워서 잠재워 버렸다. 그리하여 우둔해지고야만 민중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런 헛된 쾌락을 즐기면서 놀이들이 멋있다고 여겼으며, 번쩍거리는 그림들로 읽기를 배우는 어린애들보다도 더 어리석게, 아니 그들보다도 더 심하게 복종하는 데 익숙해지고야 만다. 
 
P. 97
우정은 성스러운 이름이고 신성한 것이며, 그것은 고귀한 자들 사이에서만 존재하고, 서로에 대한 존중에서 태어난다. 그것은 호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직함으로 지탱된다. 다른 이를 믿을 만한 친구로 만드는 것은 다른 이의 전부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친구는 자신의 착한 본성, 충실성, 한결같음을 우정의 담보로 삼는다. 잔혹함, 배신, 부정이 있는 곳에 우정이 있을 수는 없다. 사악한 자들이 서로 한 곳에 모이게 되면 그것은 음모이지 벗들의 공동체가 아니다. 그들은 서로를 좋아하지 않으며 오히려 서로를 두려워한다. 그들은 친구가 아니라 공모자들이다.
 
■  옮긴이의 말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은 젊은 인문주의자의 매우 짧은 글에 대해 긴 해제를 덧붙인 것에 대해서 독자에게 양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독자는 작품의 본질을 파악하는 명민한 시선을 갖추고 있으며, 스스로 작품의 가치를 추출해내는 예리함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라 보에시의 작품은 오랫동안 그런 독자들을 만나지 못했다. 앞에서 잠깐 언급하였지만 국내에 소개된 이 책의 한국어 번역들은 저자의 생각과 생각을 담아내는 글을 번역에 반영하지 못했다. 곳곳에서 수많은 의역과 오역이 발견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라 보에시가 이 책을 통해 자유를 위한 지식인들의 책임을 문제 삼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못한 것은 기존 번역본들의 가장 큰 오류이기도 하다.
 
민중의 역량을 과소평가하기보다는 오히려 과거의 자유로움을 기억하도록 민중을 이끌 책임이 소수의 배운 자들, 그리고 이미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그들에게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라 보에시를 그것들은 장막 뒤에 숨겨버렸다. 그래서 우리가 그동안 만났던 라 보에시는 인간의 자유로운 본질에 대한 탐색을 촉구하는 자가 아니라 단지 정치적으로 폭정을 전복하려는 혁명가의 날선 모습만을 지니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자유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정치적 목소리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곳은 바로 인간의 정신일 것이다. 이데올로기에, 권력에, 탐욕에 이미 노예가 되었다는 것을 인간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다면, 아니 자각을 위한 어떤 시도도 하지 못할 정도로 복종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면, 자유의 촉구를 위한 우렁찬 소리들은 여전히 메아리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기존의 한국어 번역본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다시 번역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라 보에시의 의도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의 목소리의 떨림을 번역어로 옮겨내면서 조금이나마 느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이 번역에 미진한 점이 많을 것이지만, 인문주의자로서의 라 보에시의 얼굴을 소개할 필요가 절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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