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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과 해석학

시리즈 마음학총서 6
출판일 2018-07-20
저역편자 닛타 요시히로 지음ㅣ박인성 옮김
출판사 도서출판 b
가격 24,000
도서규격 양장본 | 333쪽 | 152 X 224mm
ISBN 979-11-87036-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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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소개

 
<마음학 총서> 제 6권으로 출간하는 ≪현상학과 해석학≫은 일본을 대표하는 철학 연구자 닛타 요시히로新田義弘(1929- )가 1997년에 출간한 ≪현대철학-현상학과 해석학≫을 대폭 수정 ‧ 보충하여 2006년에 새롭게 출간한 ≪現像学と解釈学≫(ちくま学芸文庫)을 완역한 책으로, 일본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에 대한 필독의 연구서로서 간주되고 있다.  
이 책은 현상학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현대철학의 입장이 해석학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현대철학의 입장과 크게 호응하며 20세기에 들어서 점차 시대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 점을 눈여겨보면서, 양자가 교차하는 방식의 장면들을 주로 현상학 쪽에서 새롭게 접근하고 있다. 
현상학과 해석학은 각기 다른 쪽의 접근을 기다려 가면서 만남의 밀도를 높여갔는데, 이 점에서 본래부터 동시대적인 관심의 동향을 공유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현상학은 이미 구축된 지식에 구속되지 않고 지知의 원형을 ‘실제로 살아지고 있는 경험’에서 발견하는 것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는 ‘나타남’이라든가 ‘지향성’ 등과 같은 용어에서 쉽게 알 수 있다. 현상학적 방법의 길은 문제가 되는 사상事象 자체에 다가가기 위해 방법과 사상事象 간에 존재하는 고유한 회귀운동으로 들어가 사상事象에 대응하여 지식의 근원적인 형성을 탐색하고자 하는 것에 있다. 
이에 반해서 해석학적 철학은 인간이 제작한 것(에르곤)의 이해와 해석에 중점을 두고 역사나 문화의 기초이론을 형성하는 것을 주된 과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양자 모두 근대지식의 기본성격인 관점성perspectivity의 기능과 구조를 철저하게 묻는다는 점에서 서로 강하게 호응하는 운동이었다. 특히 이제까지 이른바 주관-객관이라는 인식론적 틀에 갇혔던 지知의 형성이 본래 이루는 구도를 찾아내고, 세계와 맺는 살아있는 관계를 재검토하는 모습을 취하면서 현상학과 해석학은 끊을 수 없는 강고한 제휴관계를 이루었다. 이 책의 의도 중 하나는 이런 측면에서 현대 지식을 둘러싼 논의나 관심 형성에 주목하여 현상학과 해석학의 친근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상학과 해석학은 그와 같이 긴밀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때문에 자주 간과되었던 중요한 기본적 사상을 둘러싼 파탄 또한 존재한다. 둘 사이에 여전히 접근이 가능한 장소는 보전되고 있지만, 그 장소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결정적인 이반과 대결 또한 부각된다. 이러한 이반과 대결은 양자의 교차축이 되는 사상事象 자체에서 유래한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 교차축의 문제들이 이 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현대 지知 이론의 전개 방향에 대한 것으로, 이 책 ≪현상학과 해석학≫은 이 문제를 해명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즉 이 책은 현상학과 해석학의 만남과 이별에 대해 심층 분석을 통해 생동하는 오늘날의 ‘현대철학’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지적 자극이 매우 풍부한 책이라 말할 수 있다. 
 
■  지은이 소개  
 
닛타 요시히로新田義弘
이시카와켄石川県에서 태어나 도호쿠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했다. 도요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도요대학 명예교수이다. ≪현상학이란 무엇인가≫(1968), ≪현상학≫(1978), ≪현상학과 근대철학≫(1995), ≪현대의 물음으로서의 니시다철학≫, ≪세계와 생명≫(2001) 등의 저서가 있고, ≪세계 자아 시간―후설 미공개 초고에 의한 연구≫, ≪후설의 현상학≫, ≪살아있는 현재―시간의 심연에 대한 물음≫, ≪초월론적 방법론의 이념―제6 데카르트적 성찰≫ 등의 역서가 있다. 
 
박인성朴仁成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불교학부 교수이다. 저서로 ≪법상종 논사들의 유식사분의 해석≫ 등이 있고, 역서로 ≪생명 속의 마음: 생물학, 현상학, 심리과학≫, ≪불교인식론 연구: 다르마끼르띠의 쁘라마나바릇띠까 현량론≫,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후설의 후기사상을 중심으로≫, ≪유식사상과 현상학: 사상구조의 비교연구를 향해서≫, ≪현상학적 마음: 심리철학과 인지과학 입문≫, ≪유식삼십송 풀이: 유식불교란 무엇인가≫, ≪유식삼십송석: 산스끄리뜨본과 티베트본의 교정 번역 주석≫, ≪아비달마구사론 계품: 산스끄리뜨본 티베트본 진제한역본≫, ≪중론: 산스끄리뜨본 티베트본 한역본≫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 ≪변행심소 촉에 대한 규기의 해석≫, ≪들뢰즈와 무문관의 화두들≫ 등이 있다. 2014년에 제2회 대정학술상, 2015년에 제6회 대원불교문화상, 2016년에 제8회 청송학술상을 수상했다. 
 
■  차례 
 
머리말 _ 11 
제1부 현상학과 해석학―그 접근과 제휴 
제1장 현대 독일철학의 동향―학적 인식에서 경험으로 17 
제2장 현상학의 역사적 전개들―본질현상학에서 ‘인간과 세계’의 현상학으로 51  
제3장 현상학 연구의 현황―생활세계와 지평의 현상학 89 
제2부 반성이론과 해석이론 
제4장 현대철학의 반성이론 119 
제5장 해석학의 현황 151 
제6장 해석학의 논리와 전개 155 
제3부 현상학의 근대 비판 
제7장 하이데거의 기술 비판 177 
제8장 후설의 과학 객관주의 비판 191 
제9장 후설의 목적론과 근대의 학지 217 
마무리하며 252 
제4부 매체성의 현상학으로 가는 길 
제10장 가까움과 거리―숨은 매체에 대한 소감 257 
제11장 현상학에 부과된 것 269 
제12장 현상학적 사유의 자기변모―프라이부르크계 현상학의 현대적 전개에 대한 전망 277  
 
초출일람 291 
후기 293 
미주 297 
사항 찾아보기 319 
인명 찾아보기 325 
옮긴이 후기 329 
 
■  책 속에서 
 
발생적 반성이 진행됨으로써 초월론적 주관성의 심층차원이 점차 노정됨에 따라서, 지향적 기능은 단지 작용지향성뿐만 아니라 여러 심층적이고 복합적인 기능을 갖는다는 점이 해명되었으니, 예를 들면 의미의 수동적 자기합치인 ‘연합이라든가, 지각에서 지평이 현상하는 방식이라든가, 특히 경험대상에 항상 선행하는 세계지평의 수동적 기능, 이 지평의 절대적 영점이면서 동시에 객관화되는 신체의 이중현상, 여러 복합기능을 보여주는 운동감각Kinästhese 등이 놀라울 정도로 정치하게 분석되고 풍부한 성과를 산출하기에 이르렀다. 이 분석군들에 보이는 바와 같이, 세계의 문제를 주제화해 가는 후설 후기의 지향적 분석은 존재자의 나타남의 장이자 세계 현현의 구역인 의식에 대한 전 범위에 걸친 분석이다. 이는 그 특유의 작업철학Arbeit-Philosophie의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이지만, 그 대부분은 공개를 예상하지 않고서 쓰여졌기 때문에 연구초고로 남아 있을 뿐이다. (29쪽)  
 
나아가 정립적 반성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해석학적 이해의 기능에 대한 적극적인 평가가 되기도 한다. 현상학과 해석학은 이 새로운 운동 속에서 다시 결합을 확인하고자 하는데, 그 일례는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이다. 가다머(1900-2002)는 ≪진리와 방법≫에서 “후설이 우리에게 의무를 부여한 현상학적 기술의 양심성, 딜타이가 철학함을 모두 거기에 둔 역사적 지평의 폭의 넓이, 하이데거가 받아들인 양자의 동기를 관철함’을 연구의 규준으로 삼아 해석학적 이해라는 경험의 분석을 기도한 취지를 서술하고 있다. 가다머는 후설의 ‘지평’의 현상을 ‘상황’으로 파악하고,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에서 분석한 ‘이해의 순환현상’이 상황 내에서 시작되는 전통 이해의 운동으로 생기하게 된다는 점을 훌륭하게 파악하고 있다. 전통으로 향해서 묻는 것은 우리가 전통으로부터 물어지는 것이 되며, 우리 자신이 지니는 선-판단Vor-Urteil이 물음의 움직임을 시작하게 한다는 것이다. 전통과 해석자 간 상호 착종된 운동은 상호의 지평이 융합해 가는 방식을 취하는데, 이 관계를 가다머는 영향작용사적 의식wirkungsgeschichtliches Bewußtsein이라 부른다. 전통에 대해서 열려진 이 역사경험은 또한 ‘물음과 답의 변증법’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는 물어진 우리가 최초의 물음의 대답을 탐구하기 위해 물음을 재구성하는 것을 가리킨다. (48쪽) 
 
이에 대해서 후설의 경우를 고찰해보자. 후설 현상학의 핵심부에 위치하는 가장 중요한 분석 중의 하나는 현출자Erscheinendes의 현출Erscheinung을 둘러싼 초월론적 고찰이며, 현출자와 현출의 차이성과 동일성에 관한 분석이다. 현출자는 현출과 구별되지만, 그러나 현출을 통해서밖에 주어지지 않은 것이며, 현출이란 ‘현출하고 있는 상相에 있어서의 현출자’에 다름 아니다. ≪논리 연구≫에 보이는 ‘의미Bedeutung’의 이론은 현출자가 현출하는 것은 항상 일정한 의미에서 규정되는 것이며, 이것은 우리가 어떤 것을 어떤 것으로서 사념思念하는 것이라는 점을 여러 예를 들어서 해명하고 있다. 여기서는 후설이 언어에서 발견한 ‘어떤 것으로서의 어떤 것’이라고 하는 구조가 수용되고 있다. 그렇지만 대상을 ‘~로서’ 규정해 가는 방식은 ‘논리 연구’에서는 통각이론의 틀 때문에 충분하게 고찰될 수 없었고, 또한 ≪이념들Ⅰ≫에서는 노에시스와 노에마를 논할 때 노에마의 구조를 분석하는 대목에서도 규정의미의 담당자인 ‘대상 자체’와 규정의미 간의 관계에 대해서 아직 형식적 해명에 머물고 있었다. (71쪽) 
이와 같은 반성의 한계에 관한 문제는 후설이 1930년대에 써서 남긴 이른바 C초고군 ‘살아있는 현재’에 등장한다. 이 주제에 관해서 이미 브란트나 헬트의 연구가 있는데, 현재 초고의 일부가 ≪저작집≫ 제15권에 수록되어 있다. 반성론의 견지에서 ‘살아있는 현재’에 대한 분석의 요점을 간략하게 말하면 다음과 같다. (1) 현상학적 반성의 최종적 차원은 반성이 갖는 필증적 명증으로 향하는 ‘철저한 반성’이며, ‘철저한 반성’은 반성이 성립하는 근거를 간단없는 흐름으로 향하여 묻고자 한다. (2) ‘철저한 반성’에 의해서 부상하게 되는 것은 반성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가 ‘살아있는 현재’로서 생기하는 ‘자아의 궁극적으로 기능하는 현재’라는 점, 이 자아의 기능현재는 ‘서 있으면서 흐르는 현재’라고 하는 양의적 사태라는 점, 따라서 반성의 단계에서 자아분열을 통해서 자아의 동일성을 확인하는 것은 언제나 ‘지나고 나서 알아차림Nachgewahren’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며, 반성에 앞서서 언제나 원초적 자아분열과 자아동일화가 생기한다는 점 등이다. 그러므로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점이 도출된다. (3) 이와 같은 전반성적 근거는 확실히 (고차의) 반성에 의해서 구조적으로 분절화될 수 있다고 해도, 그 ‘기능현재’는 반성의 시선으로부터 끊임없이 물러나고, 반성은 ‘살아있는 현재’의 생동성을 반성대상으로서 자신 안에 포섭할 수 없다. 기능현재나 원초적 자아분열이 반성으로서 생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이 여기서는 반성의 한계가 반성의 생기 그 자체에 즉해서 부상하게 되는데, 이 사태는 한편으로 반성의 좌절을 호소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반성이 극복되는 방향을 시사하고 있다. 왜냐하면 익명적인 전반성적 근거를 반성적으로 의식하는 일은 단념해야 하는데, 바로 자아의 수행에 있어서, 바꿔 말하면 프락시스의 입장에서 이미 언제나 비주제적으로 이를 알아차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전반성적인 비주제적 자기이해를 키네스테제적 의식의 ‘나는 할 수 있다’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는 것은 키네스테제적 수행에서만 확인되는 나의 능력성이며, 이 능력성이 지평의 구조화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된다. 후설이 행위의 ‘동기부여Motivation’라고 부르는 것도 역시 수행할 때의 자기의 행위근거의 비주제적 이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기 때문에, 그래서Weil-So’의 의식은 행위가 자기의 맥락Kontext으로부터 자기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105쪽)  
 
우리가 전통을 향해서 물음을 건네는 것은, 실은 전통 쪽에서 우리들에게 말을 걸어옴으로써 우리의 선입견이 물음의 활동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가다머는 종래의 역사인식에서는 이해하는 주체가 자신이 역사적임을 잊고서 역사적 인식의 대상을 대상으로서 고정시켜 왔는데, 이와 같은 역사적 대상은 대상으로서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거기에는 이해하는 자와 타자의 관계가 있을 뿐이며, 그는 이 관계를 영향작용사적 의식wirkungsgeschichtliches Bewußtsein이라 부른다. 영향작용사적 의식은 이해작용이 실시되기 위한 중요한 계기로서, 상황의 의식이라고도 말할 수 있고, 역사를 이해할 때의 지평의식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지평을 갖는다고 하는 것은, 몸 가까운 것에 제한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 가는 것이다. 역사나 전통의 이해의 경우 이해하는 자가 살고 있는 지평과 그가 타자를 이해하기 위해 몸을 옮겨가는 지평이 서로 닫혀져 있거나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활동 속에서 서로 융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해한다는 것은 이것들의 지평융합의 사건이며, 이 지평융합의 방식을 그는 ‘물음과 답의 변증법’이라고 하고 있다. (141쪽)  
 
인간의 지知는 현출자와 그 현출의 차이성을 결코 지양할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이 차이성의 구조 때문에 끊임없이 차이적 현출을 초출하고자 하는 운동을 일으킨다. 이 운동이 목적론에 다름 아니다. 존재자를 언제나 미리 일정한 지知의 틀로 거두어들이고자 하는 지평지향성의 운동이든, 존재자를 남김없이 지知로 거두어들이는 충전적 소여성으로 끊임없이 근접화하는 운동이든, 존재자의 지적 소유의 운동은 존재자의 현출이 원리적으로 관점성을 면할 수 없는 데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해한다면, 후설의 목적론을 지知의 끊임없는 미완결적인 운동을 현상학적으로 기술한 것으로 봄으로써 형이상학 전통의 지반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목적론과 현출론의 상호제약적 구조를 무시하여, 목적론을 현출론으로부터 분리해서 주장하게 된다면, 목적론은 재차 형이상학적 독단으로 화하게 되고, 역으로 현출론을 목적론으로부터 분리해낸다면, 인간의 지知는 방위성과 목적성을 결한, 끊임없는 차이의 놀이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고 말 것이다. (253쪽)  
 
이상에 걸쳐서 약술한, ‘현상’으로서의 의미적 차이성을 제약하고 있는 ‘원原현상’으로서의 ‘원초적 차이성’을, 일단 (1) 자기와 세계의 사이를 구조화하는 조건인 ‘국소화하는 차이성lokalisierende Differenz’, (2) 자기와 자기 사이를 구조화하는 조건인 ‘전반성적인 시간론적 차이성präreflexive, temporale Differenz’, (3) 자기와 타자의 사이를 구조화하는 조건인 ‘비-동일적 차이성’이라고 부르겠다. 이 원초적 차이성들은 모두 우리의 세계경험, 자기경험, 그리고 타자경험의 초월론적 조건으로서 작동하고 있고, 각각의 경험에서는 결코 대상적으로 파악될 수 없는, 어떤 숨겨진 방식으로 기능하고 있다. 후설이 ‘비주제적’이라든가, ‘익명적anonym’이라 부르는 것은 이러한 기능을 갖는 성격의 것과 다르지 않다. (264쪽) 
 
숨음을 내장하는 바로 그 사건의 사건성에서, 생명의 지知의 자기직증성自己直證性과, 서로 반대되는 의식의 구성계기들의 내적 긴장관계가 하나가 되어 생기한다. 지知의 원형이 되는 활동을 말한 것은 P. 요크의 생명의 철학이다. 요크는 바로 현상학의 생명 이해의 선구자이며, 그가 설시하는 ‘자기의식’은 차이화의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기의식이고, 다름 아닌 생명의 자각이다. 차이성이 일어나는 장소는 분명 개별적인 인간의 개시성과 다른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개별적이고 자립적인 주관성의 기능으로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차이화의 사건은 바로 거기서 활동하는 초월론적 작용을 자립적인 주관으로 보는 이해를 와해시킨다. 자기이해가 주관에서 이루어진다고 보면 모든 것이 간과되고 만다. 이것이 앞에서 서술한 반성의 자기멸각이고, 표제로 든 사유의 자기변모이다. 이것이 모든 것은 차이화로서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하는 사유의 자기이해가 없다면 말할 수 없는 차원의 사건이다. 그 경우 여기서 생겨 오는 이해의 사건이란 어떠한 것일까? 이미 완성된 구조 등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차이화의 흔적에 지나지 않는다. (286쪽) 
 
■  옮긴이의 말
 
≪현상학과 해석학≫의 저자 닛타 요시히로新田義弘(1929- )는 현재 일본 철학계를 대표하는 철학자 중의 한 사람이다. 닛타는 철학 공부를 시작했을 때 독일에서 하이데거와 후설에게서 배우고 돌아와 ≪하이데거의 철학≫, ≪인간존재론≫ 등을 저술하고 많은 후대 현상학자들을 육성한 미야케 고이치三宅剛一(1895-1982)에게서 철학하는 통찰력을 물려받았고, 이후 독일로 유학을 가 현상학을 공부하는 동안 이 책 ≪현상학과 해석학≫에서 자주 거론하는, 현상학 운동의 중진 오이겐 핑크, 거의 같은 세대의 현상학자 클라우스 헬트, 베른하르트 발덴펠스와 철학적 친분을 맺었다. 일본으로 돌아와서는 ≪의식과 본질≫의 저자인 이슬람 철학 연구자 이즈츠 도시히코井筒俊彦(1914-1993), 선불교에 관한 여러 저서를 쓴 니시다 기타로 연구자 우에다 시즈테루上田閑照(1926- )와 교류를 맺었다. 
닛타 요시히로의 학문 도정은 크게 3기로 나눌 수 있다. 제1기는 ≪현상학이란 무엇인가≫(紀伊國屋新書, 1968년)와 ≪현상학≫(岩波全書, 1978년)을 저술한 시기이다. 닛타는 이 책들에서 후설 현상학의 성립과 전개를 보여주고, 후설 이후 하이데거, 메를로-퐁티 등의 현상학자들이 전개한 현상학을 고찰해 가면서 여러 우여곡절 끝에 도달한 현상학의 사상적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시간과 상호주관성에 대한 분석은 오늘날에도 그 의의를 잃지 않을 정도로 탁월하다. 제2기는 ≪현상학과 근대철학≫(岩波書店, 1995년)과 ≪현상학과 해석학≫(白菁社, 1997년)을 저술한 시기이다. 이 책들에서 닛타는 현상학의 사유를 근대에서 현대로 이르는 철학사 속에서 파악해서 해명하고 있다. 앞의 책은 독일관념론과의 관계 속에서, 뒤의 책은 해석학과의 관계 속에서 이 점을 보여주고 있다. 제3기는 ≪세계와 생명≫(靑土社, 2001년)을 저술한 시기이다. 이 책에서 그동안 진행되어 온 사색이 ‘매체성의 현상학’으로서 결실을 보고 있다. ≪현대의 물음으로서의 니시다철학≫(岩波書店, 1998년)이 제2기에 가까운 시기에 간행되었지만, 내용으로 보아 이 제3기에 넣을 수 있다. 이 책은 니시다 기타로 연구이자 동시에 ≪세계와 생명≫에 나타나는 닛타 요시히로의 독자적인 사색이 시작했음을 알리는 연구이기도 하다. 
닛타 요시히로는 우리한테 많이 알려져 있는 ≪선善의 연구≫를 지은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郎(1870-1945), ≪의식과 본질≫을 쓴 이즈츠 도시히코井筒俊彦(1914-1993) 등의 일본의 지성들과 함께 우리가 꼭 연구해야 할 철학자이다. 다니 도오루谷徹는 닛타의 ≪현상학과 해석학≫을 해설하는 글에서 1950년대 이후 일본에서는 이분만 한 철학자를 만나 보기 어렵다고 말하면서 닛타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나 역시 닛타의 다른 책 ≪현상학이란 무엇인가≫(도서출판 b, 2014)를 번역하면서 이분이 현상학을 연구하는 수준의 깊이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현상학과 해석학≫을 만나면서부터는 닛타가 단순히 현상학을 연구하는 철학자가 아니라 이 시대에 새롭게 봉착한 문제들과 부딪쳐가며 현상학에 기반해서 새로운 사상을 창조하려는 독창적인 철학자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닛타는 다른 저서 ≪세계와 생명≫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에서 논하기 시작한 매체성의 철학을 확립했기에, 이제 그에게는 ≪현상학과 해석학≫에서 지나가듯 잠깐 말한 동아시아의 대승불교 사상과의 만남을 모색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서양철학과 동아시아의 대승불교를 한데 엮어가며 회통하고자 하는 일본의 철학자들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닛타의 작업이 유독 돋보이는 것은 그가 서양의 근현대 철학을 반성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엮어서 반성되지 않는 자리의 깊이를 발견하기까지 사상事象 그 자체로 향해 꾸준히 달려온 서양 근현대 철학의 실패와 성공을 보여주면서 그 소중함을 일깨워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방대한 유식불교 논서 ≪유가사지론≫에 대한 중국과 한국의 여러 논사들의 주석을 총망라한 신라 둔륜의 ≪유가론기≫, 규기의 ≪성유식론술기≫와 원측의 ≪성유식론소≫ 등을 집성한 신라 태현의 ≪성유식론학기≫ 같은 유식불교 논서들이 내려오고, 또 당송대 선사들의 화두를 총망라한 고려 혜심과 각운의 ≪선문염송설화≫ 같은 공안집이 전해져 내려오는 나라이다. 중국불교 내 유일한 인도불교 종단인 법상종의 유식불교가 이렇게 총망라되어 ≪유가론기≫와 ≪성유식론학기≫에 실려 있고, 가장 중국불교다운 선불교의 아름답고 심오한 화두들이 ≪선문염송설화≫에 담겨 있다. 이 중 유식불교를 오늘날 철학의 언어로 풀어가며 공부하려면, 닛타가 이 ≪현상학과 해석학≫에서 밝혀놓은 후설의 발생적 현상학과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가령 후설 현상학의 지평지향성 개념에 의탁해서 아뢰야식의 상분인 유근신有根身과 기세간器世間을 더 넓게 읽어낼 수 있다. 유식불교에서 말하는 유근신의 미세함, 기세간의 광막함은 현상학에서 말하는 신체의식과 세계의식의 암묵적이고 비주제적이고 전반성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아뢰야식의 또 다른 상분인 종자는 업종자와 명언종자이기에, 후설의 하비투스 개념을 통해 업종자의 습관적 성격을 들여다볼 수 있고, 또 가다머의 영향작용사적 의식 개념을 통해 명언종자의 역사적 사회적 성격을 잡아낼 수 있다. 또한 닛타는 후설의 현상학을 따라 나와 타자와 세계의 등근원성에 대해 말할 때 이 등근원성을 이루게 하는 부정성과 원초적 차이를 밝혀내면서 현상학과 해석학을 이른바 차이의 철학으로 데리고 가고 있다. 닛타가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이 이러한 현상학적 탐구에 동반되어야 할 중요한 책이라고 말하고 있는 데서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닛타가 차이의 철학으로 이끄는 일련의 현상학적 작업이 들뢰즈의 차이의 철학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시도는 불교로 말하자면 인도의 유식불교와 중국의 선불교를 회통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1. 들뢰즈와 재현의 발생

    마음학총서 7

    Deleuze and the Genesis of Representation(2008)

    조 휴즈 지음 | 박인성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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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현상학과 해석학

    마음학총서 6

    닛타 요시히로 지음ㅣ박인성 옮김

    2018-07-20

    양장본 | 333쪽 | 152 X 224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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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생명 속의 마음

    현상학, 생물학, 심리과학

    마음학총서 5

    Mind in Life: Biology, Phenomenology, and the Sciences of Mind(2007)

    에반 톰슨 지음ㅣ박인성 옮김

    2016-12-22

    양장본ㅣ749쪽ㅣ152x224mm

    32,000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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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법상종 논사들의 유식사분의 해석

    마음학총서 4

    박인성

    2016 세종도서 학술부문 선정도서 ㅣ 청송학술상 수상

    2015-11-05

    양장본ㅣ413쪽ㅣ152x224mm

    28,000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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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후설의 후기 사상을 중심으로

    마음학총서 3

    닛타 요시히로 지음ㅣ박인성 옮김

    2014-12-30

    양장본ㅣ204쪽ㅣ152x224mm

    22,000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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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유식사상과 현상학

    사상구조의 비교연구를 향해서

    마음학총서 2

    하루히데 시바 지음ㅣ박인성 옮김

    2014-04-25

    양장본ㅣ559쪽ㅣ155x224mm

    30,000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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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현상학적 마음

    심리철학과 인지과학 입문

    마음학총서 1

    숀 갤러거 + 단 자하비 지음ㅣ박인성 옮김

    2013-03-12

    양장본ㅣ461쪽ㅣ152x224mm

    28,000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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