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의 소개
이 책 <헤겔—그의 철학적 주제들>은 Frederick Beiser, Hegel, Routledge, USA & Canada, 2005를 옮긴 것이다. 루트릿지 출판사의 ‘루트릿지 철학자들’이라는 새로운 시리즈의 문을 열고 있는 이 <헤겔>은 헤겔 철학의 간단한 역사적 배경과 핵심 논증들 그리고 헤겔의 철학적 유산 및 헤겔 철학에 관한 좀 더 읽을거리와 헤겔 용어 해설을 담고 있다. 도서출판 b에서는 이 책을 필두로 해서 <헤겔총서>를 기획하였다.
헤겔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을 위한 입문을 목표로 하는 이 <헤겔>에서 바이저는 일반적 입문들과는 달리 텍스트 소개나 전기적인 서술이 아니라 주제적 방식으로 헤겔 철학의 주요 측면들을 다룬다. 먼저 헤겔을 왜 읽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의 헤겔 철학에 대한 접근 방법과 관련된 문제들을 검토하고 헤겔의 생애와 시대를 개관한 후, 바이저는 제1부에서 헤겔의 철학적 맥락과 초기 이상들을 독일 낭만주의 운동의 맥락 안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여기서는 또한 스피노자와 칸트 그리고 다른 동시대인들의 사상에 대한 헤겔의 투쟁이 지닌 중요성이 설명된다. 이어 제2부에서 바이저는 헤겔의 형이상학, 즉 그의 ‘절대적 관념론’과 ‘유기체적 형이상학’이라는 사유의 초석, 그리고 그의 ‘정신’ 개념과 그가 수행한 사유의 ‘종교적 차원’을 소개하고 평가한다. 제3부에서는 인식론적 문제들이 다루어지는데, 특별히 많은 사람들에 의해 헤겔의 가장 중요한 공헌으로 간주되는 것, 즉 그의 변증법적 방법이 명확하게 설명되고 아울러 <정신현상학>에서의 상호주관성(지배와 예속)에 대한 좀 더 주해적인 시도가 이루어진다. 다음으로 바이저는 제4부에서 헤겔의 사회철학과 정치철학을, 그리고 제5부에서 역사철학과 미학을 소개한 후, 에필로그에서 철학사에서의 위치를 고려하는 가운데 헤겔의 유산에 대한 이를테면 짧은 고해성사로 논의를 끝맺고 있다.
바이저가 헤겔 철학을 특히 그 역사적 맥락과 지적 발전에 대한 상세한 연구에 기초하여 재구성한 것, 가령 논의를 1790년대의 ‘근본명제비판’을 둘러싼 문제들에서 시작하고 헤겔에게 미친 초기 낭만주의의 형성적 역할을 강조하는 것 등은 우리의 헤겔 이해에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준다. 바이저는 그 밖의 다른 중요한 통찰들을 제시한다. 가령 ‘정신’과 헤겔의 종교철학을 다루는 곳들에서 바이저는 헤겔의 ‘내재적’ 신 개념에 일관되게 이루어지는 구원 신화에 대한 비판과 베를린 텍스트에서 보이는 루터주의에 대한 그의 제한된 보증을 명확하고 균형 있게 다루고 있다. 나아가 헤겔의 사회・정치적 사유 및 그의 국가 이론에 관한 장들은 역사적 맥락에 놓인 인간 의지의 목적론을 강조하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인 해석을 유감없이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바이저의 해석은 다양한 측면들을 화해시키고 종합하는 헤겔의 태도에 대한 공정한 인상을 전해준다.
■ 지은이 소개
프레더릭 바이저 Frederick Beiser, 1941-
이 책의 저자인 프레더릭 바이저는 현재 영어로 저술하는 주도적인 독일 관념론 연구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찰스 테일러와 이사야 벌린의 지도 아래 옥스퍼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하버드, 예일, 펜실베이니아, 인디아나, 위스콘신, 콜로라도 등의 여러 대학들에서 가르쳤다. 현재는 시러큐스 대학의 철학 교수이다. 그는 이 <헤겔> 이외에 <이성의 운명: 칸트에서 피히테까지의 독일 철학>, <낭만주의의 명령: 초기 독일 낭만주의 연구>, <독일 관념론: 주관주의에 대한 투쟁 1781-1801> 등의 저자이자 <캠브리지 안내서: 헤겔>의 편집자이기도 하다. 바이저의 최초의 저작인 <이성의 운명>은 독일 관념론 연구에 새로운 빛을 던져주어 그에게 명성을 안겨주기 시작한 책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책에서 그는 스피노자와 범신론 논쟁을 둘러싼 이야기를 통해 독일 관념론의 배경을 재구축하고자 했다. 이후 그는 동일한 연구 노선에서 칸트, 피히테, 셸링, 헤겔뿐만 아니라 초기 낭만주의 등도 포함한 광범위한 영역을 섭렵함으로써 독일 관념론과 당대의 사상 전개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한층 더 심화시켜 주고 있다.
이신철(李信哲)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건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숭실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논리학>, <진리를 찾아서>, <주체사상과 인간중심철학>, <한국철학의 탐구>, 옮긴 책으로는 <순수이성비판의 기초개념>, <객관적 관념론과 그 근거짓기>, <학문론 또는 이른바 철학의 개념에 관하여>, <역사 속의 인간>, <신화철학>, <칸트사전>, <헤겔사전>, <맑스사전>, <현상학사전> 등이 있다.
■ 차례
서문ㆍ7
약호ㆍ13
연대표ㆍ19
프롤로그ㆍ21
제1부 초기 이상들과 맥락
제1장 문화적 맥락ㆍ43
계몽의 황혼ㆍ반정초주의ㆍ범신론 논쟁ㆍ허무주의의 탄생ㆍ역사주의의 부상ㆍ이론-실천 논쟁
제2장 초기 이상들ㆍ59
낭만주의의 유산ㆍ최고선ㆍ윤리적 이상들ㆍ정치적 이상ㆍ종교적 이상ㆍ분열의 도전
제2부 형이상학
제3장 절대적 관념론ㆍ
형이상학의 문제ㆍ절대자란 무엇인가?ㆍ주-객 동일성ㆍ‘관념론’의 의미ㆍ관념론과 실재론, 자유와 필연성의 종합ㆍ범논리주의의 신화?
제4장 유기체적 세계관ㆍ115
유기체적 차원ㆍ유기체론의 부상ㆍ고전적 기원과 기독교적 기원 ㆍ스피노자의 유산ㆍ칸트의 유산과 도전ㆍ칸트에 대한 대답ㆍ자연철학을 옹호하여ㆍ자연철학에 관한 신화들
제5장 정신의 영역ㆍ151
생명과 정신ㆍ사랑의 정신ㆍ사랑의 형이상학ㆍ사랑의 변형
제6장 종교적 차원ㆍ169
끝없는 논쟁ㆍ초기의 기독교 비판ㆍ프랑크푸르트에서의 반전ㆍ새로운 종교ㆍ성숙한 입장ㆍ신의 개념ㆍ동일성 테제
제3부 인식론적 기초들
제7장 변증법ㆍ207
형이상학을 위한 비판적 기초ㆍ변증법에 관한 신화들과 전설들ㆍ<논리학>에서 변증법의 구조ㆍ<현상학>에서 변증법의 과제
제8장 유아론과 상호주관성ㆍ229
허무주의의 망령ㆍ논증의 맥락ㆍ욕구의 변증법ㆍ지배와 예속
제4부 사회철학과 정치철학
제9장 자유와 법의 기초ㆍ255
형이상학과 정치학ㆍ자유의 개념ㆍ자유의 배신자?ㆍ법률의 기초ㆍ마키아벨리의 도전ㆍ개혁자의 이상주의
제10장 헤겔의 국가론ㆍ291
헤겔의 정치적 기획ㆍ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비판ㆍ인륜성ㆍ유기체적 국가ㆍ시민사회ㆍ국가의 구조와 권력
제5부 문화철학
제11장 역사철학ㆍ333
헤겔과 역사주의ㆍ역사 속의 이성ㆍ이성의 간지ㆍ악의 문제ㆍ삶의 의미ㆍ헤겔 대 실존주의자들
제12장 미학ㆍ359
헤겔 미학의 역설ㆍ종속 테제ㆍ인식으로서의 예술ㆍ예술의 죽음
에필로그: 헤겔학파의 부상과 몰락ㆍ389
좀 더 읽을거리ㆍ399
헤겔 용어 해설ㆍ405
참고문헌ㆍ415
옮긴이 후기ㆍ435
찾아보기ㆍ441
■ 지은이의 말
<법철학> 서문에서 모든 철학은 자기 시대의 자기의식이라는 헤겔의 유명한 언명은 물론 자기 반성적이길 의도하고 있는 것으로서 그 자신의 철학에 적용된다. 이 언명을 가지고서 헤겔은 그 자신의 철학이 실제로 다름 아닌 그의 시대의 자기의식, 그 시대의 최고의 이상들과 열망들의 표현임을 고백했다. 그의 시대는 1797년부터 1840년까지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치세 동안 프로이센의 정치적 삶을 지배했던 프로이센 개혁운동의 시대였다. 그 이상들 가운데 여럿이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할지라도, 그리고 개혁에 대한 희망이 1820년대와 1830년대에 거듭해서 좌절되었다 할지라도, 이 희망들과 이상들은 최소한 청년들의 정신과 심정 속에 살아 있었다. 이 몇 십 년간을 통해 그들은 그들의 군주가 마침내 개혁을 위한 그의 약속을 이행해줄 것을 열렬히 희망했다. 그 희망이 남아 있는 한 헤겔의 철학은 현실에서는 아니라 하더라도 최소한 열망에 있어서는 그 시대를 표현한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에필로그>에서
■ 옮긴이의 말
우리의 전반적인 헤겔 이해와 연구의 상황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우선 철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나 그것의 의미를 인정하는 이들은 암암리에 헤겔 철학이 지니는 중요성을 느끼면서도 그에 대해 일반적이고 단편적인 관념 이외에는 그리 많이 알고 있지 못하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는 물론 이해할 만한 이유들이 존재한다. 학부 커리큘럼에서―다른 철학자들과 비교하여―헤겔 저작에 대한 부분적인 소개마저도 그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무엇보다 먼저 지적되어야 할 모습이겠지만, 대학원 세미나나 다른 학술 강좌들에서도 헤겔 철학의 취급방식은 <정신현상학>이나 <논리의 학>, <법철학> 등의 일정 부분들에 대한 강독에 그치고 있다. 아니 오히려 최근에는 그마저도 위축되고 있는 듯한데, 그 까닭은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과 더불어 거의 생활감정이 된 일반적 확신, 즉 세계란 이성적 전체와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확신이 헤겔의 체계를 인간적 오만함의 망상적 산물로 치부함으로써 헤겔 독해의 이유가 붕괴된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런 막다른 골목에 놓인 듯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옮긴이의 생각에 그것은 우리에게 헤겔 철학의 미로에서 길을 찾을 수 있게 해주는 아리아드네의 이끄는 실들이다. 요컨대 우리는 헤겔 철학의 주제들과 그것들이 지닌 역사적 맥락에 대한 설명을, 그리고 헤겔 철학의 복잡한 개념 세계를 밝히 해명해주는 개념적 지도와 헤겔 텍스트들의 전기적인 전개를,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헤겔 철학체계의 근거짓기 이론적인 구조에 대한 해명을 필요로 하리라는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옮긴이에게는 체계이론적 논의로서는 회슬레의 <헤겔의 체계>가, 개념적 지도 및 헤겔 연구와 관련된 사항들에 대한 안내로서는 <헤겔사전>이, 헤겔 사유의 전기적 전개로서는 핀커드의 <헤겔>이 떠오르지만, 헤겔 철학의 주제들 및 그 역사적 맥락에 대한 설명을 위해서는 바이저의 바로 이 <헤겔―그의 철학적 주제들>이야말로 안성맞춤의 선택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따라서 옮긴이로서는 이 <헤겔>이 헤겔의 철학에 대한 이해의 길을 찾고 있는 독자들에게 그 자체로서나 헤겔 자신의 텍스트들에 진입하는 데서 풍부한 열매를 맺는 기여가 될 수 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