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을 발행하며
우리 삶과 현실의 구체성으로 낙하할 수밖에 없는
비평의 중력-고명철 문학평론집 <문학의 중력>
고명철 문학평론집 <문학의 중력>이 나왔다. 제목 중의 ‘중력’은 인간이 땅을 딛고 살 수 있게 하는, 예의 자연법칙 그 중력이다. 저자는 “인간은 중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중력을 체감하며 산다는 것은 인간을 비롯하여 뭇 생명체들과 공존, 상생하는 현실 인식을 갖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공존과 상생이 깨진 현실을 구체적으로 증언하는 작품들, 역사에서 나타나는 패배와 환멸의 서사들을 매개로 하여 이들의 구체성에 천착한 비평을 모은 평론집이다.
<문학의 중력>은 ‘역사와 현실과 마주하는 비평의 비천함’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우리 역사에서 패배의 경험과 지금 현실의 비루한 삶 등을 문학적 진실로 드러냈다면 비평은 이들에게 온전히 낙하하여 다가가는 중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저자는 “생경한 이론과 개념을 무리하게 끌어와 작품을 애써 비평하면 작품의 온전한 실상과 어긋나면서 비평의 구체성이 증발된다. 우리의 삶과 현실의 구체성을 무화시키는 이런 비평은 비평으로서 활력을 잃을 수밖에 없고 비평의 중력을 상실한 셈”이라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부제로 단 ‘비평의 비천함’은 반어적이고 도발적이다. 중력을 가졌다면 마땅히 아래로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의 중력>은 5부로 나누어 모두 39편의 글을 실었다.
1부의 부제는 ‘평화 체제를 향한 문학운동/정동’이다. 여기서는 분단의 극복과 평화 체제의 실천을 문학운동의 시각에서 살펴본다.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의 성과와 남북 문학 교류의 새로운 동력을 위한 문학운동의 과제를 모색하는 글이 들어 있다. 또 북한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홍석중의 장편소설 <황진이>와 이경자의 분단 서사들, 김재영, 김현식 소설에 나타나는 분단의 문제의식에서 문학이 울리는 정서에 주목한다.
2부 ‘정치적 상상력을 수행하는 언어들’은 단재와 신동엽, 김수영으로 이어지는 혁명의 문학적 사유는 어떤 것인지를 세심히 살핀다. 그리고 이 문학적 사유들을 길어 올려 새로운 혁명의 동력을 구성하는 데 있어 재일조선인 등의 ‘한국어문학’도 새롭게 인식해야 할 것을 역설한다. 저자는 “재외동포문학은 그동안 한국문학의 정치적 상상력으로 다루기 힘들었던 문학 사안을 자유롭게 다루는 특장을 지니고 있고, 근대성을 철폐하는 혁명의 임무에 유연성을 부여할 수 있어 문학 주체로서 인식해야 하고, 북한문학도 여기에 든다”고 한다.
3부는 일제 강점기, 4·3제주항쟁, 한국전쟁, 5·18광주항쟁 등 역사의 가시밭길에서 패배와 환멸을 껴안은 문학작품의 비평이 주를 이룬다. 이기영의 <대지의 아들>은 식민지배에 협력하는 이야기인가, 아니라면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 소설에서 보이는 이기영의 정치적 상상력의 스펙트럼은 어떤 단일한 것으로 말할 수 없어” 기존의 독법들을 꼼꼼히 분석한다. 또 4·3제주항쟁을 기억하고 증언한 서사들에서 정치윤리의 언어들을 캐내며, 염상섭의 소설에서는 전쟁으로 삶의 기반과 기존 윤리의식이 붕괴되어 일상이 상처뿐인 전쟁미망인과 이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이 상처를 치유하고 정상적 일상을 회복하고자 하는 신생의 욕망을 읽어낸다.
4부는 한국사회의 자본주의 세태를 포착한 박완서의 작품과 위험하고 가파른 욕망을 드러내는 한승원의 소설들에서 자본주의·욕망의 구조가 어떻게 짜여 있는지 살핀다. 노동 안팎을 이루는 삶의 현실을 다룬 조영관의 작품과 매춘의 비루한 생을 그린 김우남의 소설 비평은 ‘삶의 심연으로부터 솟구치는 생의 경이로움’을 발견하도록 이끈다. 은미희의 성폭력에 대한 약소자의 증언을 ‘문학적 보복과 구원’으로 위무하기도 한다.
5부는 저자가 ‘압록강의 접경지대를 응시하며’ 식민지 근대의 역사를 환기하고, 폭파된 압록강 단교에서 분단의 현실을 다시 새긴다.
<문학의 중력>은 비평의 과제를 “작품을 매개로 동시대의 삶과 현실에 비평적 개입을 시도함으로써 인간과 세계를 탐구하는 만큼 인간의 삶과 현실의 구체성에 천착해야 할 것”으로 삼는다. 이 과제는 비평의 근본이어서 평범하기도 한데, 저자는 그렇다면 래디컬한 비평이 절실하게 수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지은이 소개
고명철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 ―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 등단. 아시아ㆍ아프리카ㆍ라틴아메리카 문학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지구적 세계문학 연구소>의 연구원.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세계문학, 그 너머>,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수상 : 2011년 젊은평론가상
최근작 : <김석범 x 김시종>,<문학의 중력>,<세계문학, 그 너머> … 총 49종
■ 차례
책머리에 - 5
제1부 평화 체제를 향한 문학 ‘운동/정동’
판문점 선언 이후 한반도의 평화 체제를 향한 문학운동 - 15
판문점, 분단, 그리고 평화의 정동 - 29
21세기에 마주하는 분단 극복/통일 추구의 문학 - 39
분단자본주의의 적폐와 마주하는 - 51
‘분단 극복/민주주의’, 그 뜨겁고 골똘한 성심 - 61
-이호철의 연작 장편소설 <별들 너머 저쪽과 이쪽>
북한의 정치적/도덕적 정당성을 갖춘 인물이란? - 71
-백남룡의 장편소설 <60년후>
시대의 어둠을 꿰뚫는 비평의 혜안과 문학운동 - 77
-평론가 임헌영의 현실인식
제2부 정치적 상상력을 수행하는 언어‘들’
혁명, 수행의 언어들: 해방과 민주주의 상상력 - 99
ㅣ보유ㅣ 해방: 민족의식을 넘어 사회의식의 변혁을 수반하는 - 123
-테리 이글턴 외 3인의 <민족주의, 식민주의, 문학>
다시 살피고 새롭게 비평해야 할 민중성 - .129
-김종철의 평론집 <대지의 상상력>
후일담 문학: 역사의 청산주의와 새것의 맹목을 넘어서는 - 135
생태적 상상력이 깨어날 ‘느낌의 0도’ - 149
-박혜영의 <느낌의 0도>
4·3문학, ‘대안의 근대’를 찾아 - 155
부산의 젊은 비평의 풍향계 - 163
-황선열, 허정, 손남훈, 김필남, 조정민의 비평적 성취를 중심으로
또다시, ‘기초예술’로서 문학을 ‘지원’하는/할 문학예술 정책 - .181
‘따로 또 같이’의 삶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언어 - 193
제3부 삶과 역사의 가시밭길을 걷는
제국의 만주 국책에 대한 길항의 정치적 상상력 - 201
-이기영의 장편소설 <대지의 아들>
전후의 신생을 모색하는 전쟁미망인의 존재 양상 - 229
-염상섭의 장편소설 <화관>
제주 항포구의 창조적 저항과 응전 - 243
-오경훈의 연작소설 <제주항>
기억, 증언, 그리고 증언문학: 4·3항쟁의 정치윤리의 언어들 - 257
풍화하는 해방공간에 맞선 정치적 상상력 - 273
-강기희의 장편소설 <위험한 특종>
5·18광주민주화항쟁: 낭만적 초월, 역설의 숭고성, 역사의 시간 - 285
-정도상의 장편소설 <꽃잎처럼>
패배와 환멸을 껴안고 넘어가는 - 291
-손병현의 장편소설 <동문다리 브라더스>
식민주의 근대와 공모하는 민낯, 그 왜상 - 303
-심윤경의 장편소설 <영원한 유산>
바람섬의 구술서사: 제주어, 제주 여성, 제주의 역사적 풍정과 삶 - 309
-한림화의 소설 <The Islander>
베트남전쟁, 당신의 기억은 공정하십니까? - 317
-비엣 타인 응우옌의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제4부 삶의 심연으로부터 솟구치는 생의 경이로움
박완서가 포착한 한국 자본주의 정동의 미망 - 325
-<휘청거리는 오후>, <미망>을 중심으로
뜨거운 세상을 이루는 것들: 노동, 현실, 그리고 삶 - 333
-조영관의 소설세계
욕망의 바다, 바다의 욕망 - 343
-한승원의 「목선」, <멍텅구리배>, <항항포포>를 중심으로
자기 탐구와 모험, 그리고 주체적 욕망 - 351
-고시홍의 소설집 <그래도 그게 아니다>
비루한 생을 이루는 삶의 경이로움 - 361
-김우남의 장편소설 <릴리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
문학적 보복과 구원: 성폭력에 대한 약소자의 증언 - 373
-은미희의 단편 「가족사진」
욕망의 생태도: 자기애와 질투의 정동에 대한 성찰 - 381
-김경순의 장편소설 <빌바오, 3월의 눈>
비루한 삶의 경계를 넘는 숭고한 사랑 - 391
-윤성호의 소설집 <룰렛게임>
우리 시대 두 젊은 신예와의 조우 - 401
-민병훈과 이세은
제5부 압록강의 접경지대를 응시하며
소년, 압록강을 넘었으나 돌아오지 못한 - 413
-이미륵의 장편소설 <압록강은 흐른다>
단동과 압록강, 접경지대의 역사와 일상 - 419
남만철도와 만주, 그리고 동아시아 - 431
러일전쟁, 푸이, 압록강의 다리들 - 447
수록작품 출전 - 459
■ 책 속에서
2018년, 한반도를 둘러싼 나라 안팎의 현실은 흡사 롤러코스트를 연상하기에 충분하다.
P. 31
… 이호철의 「판문점」은 최인훈처럼 분단의 현실을 직시하되 양립할 수 없는 대위적 메타포를 이호철 방식으로 교란시키고 심지어 전복시키고자 한다. 그래서 비약을 허락한다면, 한반도 분단의 시계視界 제로인 상태, 달리 말해 정치사회적 상황으로서 영점을 수락하지 않고 그 당시 정치사회적 한계 안에서 남북 교류의 가능성을 탐침하고 있다. 이 작업이 ‘판문점’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판문점」을 한국문학사에, 아니 머잖아 가시화될 진정한 통일문학사에 등재해야 할 문제작으로서 손색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판문점, 분단, 그리고 평화의 정동>)
P. 49
이와 관련하여, 이후 한국문학의 시계視界에서 진력해야 할 것은 한국문학뿐만 아니라 북한문학 바깥에서 묵묵히 자신의 존재가치를 위해 고투해온 재외 디아스포라문학의 창작과 비평에 대해 적극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다. 재일조선인문학, 중국조선족문학, 재소고려인문학을 포함하여 구미에 산재한 재외 디아스포라문학에서 분단 극복과 통일 추구의 문학적 진실이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그 중요한 문학적 성취를 타산지석 삼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재외 디아스포라문학에서 한반도의 남과 북은 어떻게 접근되고 있는지, 그래서 남과 북을 객관화의 시선에서 인식함으로써 21세기 국제사회의 다층적 이해관계 속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의 길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21세기에 마주하는 분단 극복/통일 추구의 문학>)
P. 288~289
작가 정도상은 이 같은 시민군의 ‘역설의 숭고성’이 지닌 경이로움이야말로 우리가 쉽게 망각해서는 안 될 1980년 광주가 외롭게 지켜나갔고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고갱이임을 서사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의 구성을 이루고 있는 시간은 광주 도청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객관화하는 물리적 시간으로서 의미, 곧 계엄군에게 참담한 희생을 당하는 수난사로서 시간의 의미보다 이러한 객관적 조건 속 수난의 시간을 항쟁의 역사적 승리자로 전복시키는 시간의 의미를 갖는, 즉 민주주의 역사를 새롭게 생성시키는 ‘역사의 시간’의 경이로움으로 발견된다. 그러니까 정도상의 소설 속 시간 구성은 좁게는 광주 민주화 항쟁, 넓게는 한국 민주화 항쟁의 ‘역사의 시간’의 경이로움을 발견하고 재구축하는 서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표면상 시민군을 에워싸고 있는 시간은 죽음과 절멸의 시간이 아니라 그것을 무화시켜버리는 또 다른 삶과 탄생의 시간이다. -(<5·18광주민주화항쟁: 낭만적 초월, 역설의 숭고성, 역사의 시간>)
P. 329
박완서에게 비쳐진 1970년대 중반 한국사회의 자본주의 세태는 사회경제 윤리 감각이 빈곤한, 심하게 진단하면, 이후 이러한 세태가 지속될수록 결혼을 비롯한 각종 일상이 왜곡된 자본주의 및 그러한 자본주의에서 사회경제 윤리 감각이 결여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리하여 『휘청거리는 오후』는 맹목화된 자본축적 욕망의 복마전이 일상화될 수 있는 끔찍한 현실을 겨냥한 예지적 비판으로 손색이 없다. -(<박완서가 포착한 한국 자본주의 정동의 미망>)
P. 380
… 작가 은미희는 「가족사진」에서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될 성폭력에 대해 가차 없는 심판을 수행한다. 그리고 그때, 거기에서 죽어버린 한 가엾은 영혼에 대한 구원의 성격을 띤 보복을 가한다. 그것은 사회가 방기한 약소자의 맺힌 한을 풀어주는 문학적 보복이다. 또한 이 문학적 보복은 윤리적 타락과 부정을 은폐한 가족보다 부정한 것을 일소하여 새로운 윤리를 정립하고자 한, 그래서 새로운 가족을 모색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작가의 문학적 당부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작중 인물 어머니가 경찰서에서 그의 아들에게 한 말에 담긴 진실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문학적 보복과 구원: 성폭력에 대한 약소자의 증언>)
■ 지은이의 말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 토론과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자명한 것으로 간주된 모든 것들, 앞서 언급했듯, 개인의 욕망을 자유롭게 표출하는 데 따른 민주주의의 문제를 비롯하여 우리에게 익숙한 모든 삶의 내용-형식을 망라한 숙고와 성찰이 절실하다. 팬데믹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삶의 태도와 가치관을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팬데믹 이후의 현실을 맞이해서는 곤란하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엄정히 성찰해야 할 사안이 있다. 아주 지극히 상식적인 사안이다. 인간이 ‘지구에 살고 있다’는, 이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너무나 쉽게 망각하고 있다. 인간은 지구에 살면서 중력을 온몸으로 체감하면서 살고 있다. 태어나 죽기까지 인간은 땅을 떠나서 살 수 없다. 그만큼 인간은 평생 중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이 인간의 숙명이며, 인간의 존재론적 조건이다. 중력을 체감하면서 산다는 것은, 지구에 살고 있는 생물종의 하나로서 인간을 인식한다는 것이고, 따라서 지구에서 살고 있는 뭇 생명체들과 공존 및 상생하는 생명체로서 인간에 대한 인식을 벼려야 한다. 이것은 서구의 근대적 인식에서 핵심인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래디컬한 비판이 가열차게 펼쳐져야 할 뿐만 아니라 인간중심주의에 뿌리를 둔 서구의 근대와 또 다른 ‘대안의 근대’를 모색해야 할 과제가 제기된다. 작금의 팬데믹이 우리에게 준열히 다그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같은 래디컬한 비판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은 내게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인간의 삶과 현실의 구체성을 한층 넓고 깊게 성찰해야 한다는 비평의 과제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