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의 렌즈로 포착한 다큐 문학”
1. 이 책의 소개
시와 소설을 쓰면서 다큐 사진 작업을 하는 이강산 작가의 네 번째 소설집 바다, 인간의 조건이 도서출판 b에서 출간되었다. 이 소설집에는 세 편의 중편 소설이 담겨 있다.
작가는 사진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철거 예정지, 여인숙의 달방(월세방)에 직접 머물며 이 소설들을 썼다. 작가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좁히고 ‘내부자의 시선’으로 실존의 진실을 기록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작가는 냉난방조차 불가능한 여인숙 달방에서 현재 4년 가까이 생활하고 있다.
바다, 인간의 조건은 지상에서 가장 가혹한 조건에 처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재적 의미와 삶의 가치에 대하여 묻고 있다. 다시 말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공존과 상생을 꿈꾸는 작가의 희망을 ‘문자의 렌즈로 포착한 다큐’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작가가 함께 먹고, 자고, 싸우며 119구급차에 실려 가는 거처에서 혈육의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다. 그들을 작가는 어머니, 이모, 형님, 누이, 아우, 삼촌들이라고 부른다. 두 편의 중편 소설 「별의 나라」와 「바다, 인간의 조건」은 그 가족들 이야기다. 또 한 편의 중편 소설 「금반지, 인간의 조건」의 중심인물 이 씨는 일제 징용과 한국전쟁에서 살아남아 평생 오일장 장터를 떠돈 장돌림 아버지다. 자전적 요소가 강하게 담겨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이다.
2. 지은이 소개
■ 이강산
1958년 충남 금산 출생했다. 1989년 <실천문학>으로 작품활동 시작하여 소설집 <아버지의 초상(肖像)> <황금비늘>, 장편 소설 <나비의 방>, 시집 <하모니카를 찾아서> <모항(母港)> <물속의 발자국>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 흑백명상사진시집 <섬, 육지의>, 휴먼다큐흑백사진집 <여인숙>, <집-지상의 방 한 칸>, 다큐논픽션 <인간의 시간-여인숙 달방 367일> 등을 출간했다. 휴먼다규 흑백사진개인전을 6회 개최했으며 다큐사진집 여인숙으로 은빛사진상(2021), 부다페스트 국제사진상(BIFA) ‘Book-Documentary’ 부문 동상(2022)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작가회의, 온빛다큐멘터리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 차 례
별의 나라 7
금반지, 인간의 조건 189
바다, 인간의 조건 243
ㅣ발문ㅣ 쓸쓸한 아름다움 이면우 315
ㅣ작가의 말ㅣ 329
4. 작가의 말
‘진리를 규명하고 싶은 감정이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해서 일본 최고의 다큐 사진 ‘미나마타’를 기록한 구와바라 시세이.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는 한 번도 쓴 적이 없다’고 천명한 작가 아니 에르노. 그리고 발터 벤야민.
이들은 내게 글도 사진도 ‘산책자가 아니라 내부자의 시선’이 필요함을 일깨워 주었다. 내가 중심을 잃고 흔들리면 그때마다 거리(距離)의 문제를 송곳처럼 들이밀었다. 대상과 나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좁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작업이 다큐멘터리다. 소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이 당연한 이치를 종종 의심한 덕분일 것이다. 현재 내 시선이 머문 시공간이 어딘지, 진실을 분별할 만큼 거리는 좁혔는지, 여인숙과 철거 현장을 오가며 시시때때로 내게 반문하는 것은. 바다, 인간의 조건이 그 대답의 일단을 보여준다면 다행이겠다.
5. 추천사
이강산 작가 생애가 고스란히 투영된 주인공 용주. 스러져가는 것들에 대한 혼신의 집착, 그 심성과 자세. 아우라처럼 피어나는 침울한 낭만과 불안한 자유, 재개발 임박한 전통 여인숙 다큐 사진의 꿈을 항해하다가 그만 접안해버린 동묘 벼룩시장. 백사마을 보존을 비롯한 여러 대책위의 막막한 시도들.
거기에 더해지는, 생계형 쓰리잡 소설가 싱글맘 수빈, 얼핏 동료이자 슬쩍 연인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함께 좌초하는 난파선. 밤하늘 별을 배경으로 이어지는 천국의 계단 섹스까지도 철거가 예정되어 있는, 대한민국의 암담한 서정시.
용주에게 이 모든 게 고통의 이명(耳鳴)으로 찾아오니 어찌한단 말인가. 흘러갔다고 애써 잊고 있자니 이렇듯 홀연히 나타나는 삶의 숙제들. 해결된 게 하나도 없는데 당신은 뭐하냐고 작가는 대놓고 물어온다. -한창훈(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