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을 발행하며
유용주의 소설집 <죽음에 대하여>가 출간되었다. 시인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유용주가 2000년 <실천문학> 가을호에 소설을 발표한 이후 20년 만에 펴내는 첫 소설집이다. 책 속에는 모두 8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유용주는 그동안 5권의 시집, 2권의 장편소설과 5권의 산문집을 펴내는 등 활발하게 문단 활동을 해왔다.
장편소설이나 산문집에서 이미 보여준 바가 있지만 유용주의 문체는 독특하다. 소설가 김종광은 유용주의 문체를 두고, 두 가지 문체를 구사하는데 “우리말의 독특함과 가락을 절묘하게 혼합한 용주체”와 “명확하고 단호하고 호방하고 간결한, 야수의 절규와도 같은 야수체”라고 명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주로 “산문은 용주체”가, “시는 야수체”가 구사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러면서 ‘용주체’를 소설가 박상륭과 이문구 문체의 중간쯤에 있다고 하는데 소년시절의 유용주는 박상륭의 출생지인 장수에서 자란 바가 있고 결혼 후에는 이문구의 고향 보령과 인접한 서산에서 줄곧 살아오고 있으니 그럴 듯한 분석이다.
그런데 문제는 유용주의 소설이 문체도 문체지만 종래의 소설에 대한 관념을 일거에 뒤흔드는 묘한 마력이 있다는 점이다. 소설적 구성이나 인물 묘사 등에서 기존의 소설적 문법을 전혀 따르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도 읽어가는 데 속도감이 생기고, 읽고 나면 묵중하게 가슴을 흔들어 놓는 감동이 다가온다. 아마도 머릿속에서 짜낸 소설이 아니라 작가가 살아오면서 겪고 느낀 이야기를 진솔하면서도 거리낌 없이 펼쳐내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입심 좋게 구사되는 소설들은 마치 어떤 한 인물의 생존투쟁기처럼 읽힌다.
8편의 소설 가운데 <디오게네스>와 <콩 볶는 집>과 <오래된 사랑>을 제외하면 모두 신산스럽고 안타깝게 살아가는 가족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나는 그 애틋한 이야기들을 투덜대거나 화를 돋우는 어투로 독자에게 가감 없이 전하고 있다. 이것이 충청도 서남단 식 머퉁이 어투다. <고주망태와 푸대자루>에서는 친구와 함께 고주망태가 된 다음 날 새벽에 잠에서 깨어 큰형을 중심으로 한 푸념 섞인 듯한 가족이야기를 묻고 들려준다. <검정구두> 역시 행방불명이 되기도 하는 작은형의 이야기를, <불>에서는 나이차가 많은 막냇동생에게 들려주는 가족의 이야기를, <호줏기>는 큰형이 죽은 이후의 이야기를, <황산벌>은 결혼 이후 처가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이 가족 연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소설들은 가족의 죽음이 동반되는 삶에서의 서글픔과 계속되는 삶의 고단함에서 오는 씁쓸한 비애가 묵중하게 실려 있는데 유용주는 특유의 해학적 필치로 독자를 울렸다 웃겼다 하고 있다.
“살아가면서, 상대할 가치가 없는 사람은 무시하고 안 보면 되지만, 처가는 그럴 수도 없고, 돌아버리겠다. 이건 마음의 문제다. 이건 감정의 문제다. 이런 말도 있다. 친가를 포함하여 가족은, 보는 사람이 없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다. 웃고, 떠들고, 밥을 먹고, 말을 섞지만 애증관계이다.”(224쪽)
이렇듯 흔히 가족은 끊임없이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관계의 존재들이지만 종종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 존재라는 세속적 명제를 핍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 지은이 소개
유용주
1959년 출생. 1979년 정동 제일교회 배움의 집에서 공부했다. 1991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시를, 2000년 <실천문학> 가을호에 소설을 발표하면서 문단 활동을 했다. 시집으로 <가장 가벼운 짐> <크나 큰 침묵> <은근살짝> <서울은 왜 이렇게 추운 겨> <어머이도 저렇게 울었을 것이다>, 산문집으로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쏘주 한잔 합시다> <아름다운 얼굴들> <그 숲길에 관한 짧은 기억>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다>, 장편소설로 <마린을 찾아서> <어느 잡범에 대한 수사보고> 등이 있으며 1997년 제15회 신동엽창작기금, 2018년 거창평화인권문학상을 받았다.
수상 : 1997년 신동엽문학상
최근작 : <내가 가장 젊었을 때>,<죽음에 대하여>,<어머이도 저렇게 울었을 것이다> … 총 29종
■ 차례
디오게네스 7
콩 볶는 집 25
고주망태와 푸대자루 33
검정 구두 67
불 83
오래된 사랑 131
호줏기 145
황산벌 167
ㅣ발문ㅣ김종광 229
ㅣ작가의 말ㅣ 247
■ 책 속에서
우여곡절 끝에 결혼한 우리가 맨 처음 집을 얻은 곳은 동문동 2층집이었다.
나중에 들었는디 가관이 개판이여. 순전히 폭력이었더구먼. 깡패들하고 어울려 떠돌아다니다가 형수 동네 근처 저수지를 막을 때 토목공사 십장을 했디야. 밥과 새참을 부쳐 먹던 동네를 기웃거리다 형수가 눈에 띄었는디 삼삼한 거라. 처음에는 한번 건드려보려고만 했겄지. 잘 알겄지만 경상북도 사람들 어지간하잖어. 대부분의 농촌이 보수적인데다가 밀양 박씨 집성촌이니 씨알도 안 먹혀들어간 거라. 더군다나 근본이 없는 어떤 떠돌이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전라도 사람들한테 눈이 곱지 않을 때였고, 한마디로 거절당했지. 형 성격이 불이여 불, 완력 꽤나 썼을 때니 곱게 물러날 리가 없지. 부산에 내려와서 전포동 서면 몹쓸 것들을 다 동원해서 다시 올라간 거지. 야전도끼, 자전거 체인, 몽둥이, 삽, 빠루를 비롯해서 공사판 연장까지 총동원해서 급습을 한 거여.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로 딸을 못 준다는 노인네와 집안 오빠들을 물리치고, 뭐 대문을 야전도끼로 박살냈다고 하는디 오죽했겄냐. 그냥 눈 번히 뜨고 큰딸이 보쌈당하는 걸 보고만 있었겄지. 그 길로 부산에 내려와 살림을 차렸대. 말이 살림이지, 단칸방에 감금하고 출입을 못 하게 헌 거여. -(<고주망태와 푸대자루>, 부분)
한번은 대현이 큰형 태현이가 장가를 간 날이었다. 어머니는 늘 그렇듯 광을 보다가 잔치가 파할 무렵 집에 왔다. 아버지는 손님이 준 잔을 사양 않고 받아 마시고 벌러덩 덕석 위에 눕고 말았다. 동네 머슴들 부축을 받아 작은형이 바작에다 짊어지고 왔다. 잠을 잔 것까지는 좋은데 손님들은 모두 돌아간 텅 빈 잔치마당에 아버지 홀로 누워 있는 모습을 상상해봐라. 설거지가 다 끝난 마당에 큰 대자로 누워 한복에다 벌벌 오줌을 싸는 모습을. 그렇게 술이 좋은가. 우리 동네는 주막이 세 개나 있었다. 동네 기세도 좋고 국도 옆에 있어 장꾼들 들러 가기 딱 좋다. 거기 주막집 세 개에 외상값이 제일 많은 것도 아버지였다. 외상장부에 바를 정자가 제일 긴 게 아버지였다. -(<호줏기>, 부분)
나중에는 장모가 처남댁 눈물까지 의심했다. 처남댁은 남편을 잃었다. 믿거나 말거나 삼우제가 끝나고 처남댁이 내게 넌지시 얘기했다. 결혼 초기였는데, 어떤 스님이, 처남 얼굴을 보더니 비명횡사할 상이라고 했단다. 그 예언이 맞았나, 하. 문제는 돈이었다. 처남이 평소 가지고 있던 현금에다 각종 보험금, 퇴직금, 보상금, 합의금, 예금, 집, 차…… 장난이 아니었다. 처남 명의로 되어 있는 아파트 가격만 해도 12억이 넘게 나갔다. 나는 앞에서 충분히 이해한다고 썼다. 평소 처남댁이 현명한 사람이었다면, 큰아들 대학 때까지 키우느라 돈 많이 들어갔고, 결혼시켜 제금 내주느라 고생했으니 얼마간 뚝 떼어주면 좋으련만, 처남댁은 우선 정신이 없고, 그럴 마음 여유가 들지 않았을 것이다. 장모는 사정이 안 좋은 처남댁 친정 식구들 들먹이고 처남댁이 개가를 하게 되면, 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 된다고 울었다. 누구 좋은 일 시키려고 생떼 같은 자식이 죽었느냐고 울었다. 남자한테 환장하면 자식이고 뭐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조카들을 붙잡고 울었다. 나는 자식의 죽음 앞에 현실적으로 돈을 따지는 장모가 무서웠다. 그러면서 돈 없는 내가 한없이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황산벌>, 부분)
■ 지은이의 말
오래 살았다.
철들자 망령이라더니 간신히, 등단한 느낌이다.
■ 추천글
이건 진짜 소설이다. 누가 설명해줘도 무슨 소리인지 알까 말까 한 이야기도 아니고, 물처럼 마시는 즉시 빠져나가는 이야기도 아니다. 소주처럼 뜨거운 진짜 소설이다.
유용주의 소설은 깜깜한 굴속 같다. 곰 시인 호랑이 소설가 동체가 사투를 벌이는 굴속. 곰은 금과옥조, 취중진담, 언중유골 같은 죽비를 뽑아낸다. 호랑이는 따지고 부르짖고 절규한다. 이 소설집은 곰 시인과 호랑이 소설가가 쓰디쓴 언어를 먹으며 으르렁대는 동굴이다. 호랑이 소설가는 밖으로 뛰쳐나왔고, 곰 시인도 곧 나올 것이다. - 김종광 (소설가)
유용주의 소설을 읽으며, 자꾸 유용주가 보여 웃음이 스미어 나왔다. 수필인지, 소설인지 헷갈릴 만큼 그의 목소리가 흥건히 배어 있는 ‘이야기’들은 과연 유용주다웠다.
그는 ‘쓸데없이’ 화를 내고 싸우는 사람이다. 이태리 대리석처럼 맨들거리는 세상에서 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푸석돌 같다. 화가 나서 집어던져도 푸스스 부서져 버리는 돌은 얼마나 ‘쓸데없는’ 분노인가.
영리하기 그지없는 세상에서 ‘쓸데없다’는 말처럼 순정한 것이 있을까.
‘나뭇잎보다 미세하게 날개를 떨며 우는 매미소리에도 짖는’ 개의 주인과 싸우고, ‘숨이 안 넘어간 토끼를 불에 그슬리는’ 노인에게 ‘죽여 버리겠다고 고함을 지르는’ 그의 분노는 쓸데없이 순정하다. 어느새 순정이 죄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그가 그려낸 인물들은 만나면 아웅다웅 다투고, 싸가지 없고, 추접스러워도 며칠 보지 않으면 그리워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웃의 얼굴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우리 삶의 방식이며, 소설의 본분이기도 하다. 볼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아직 유용주표 소설이 있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이시백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