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을 발행하며
“고바야시 몬조는 어느 날 밤 아사쿠사 공원에서 한 난쟁이를 목격한다. 그런데 그가 품에서 떨어뜨린 꾸러미에는 푸르스름하게 변한 사람 팔이 들어 있었는데…….”
도서출판 b에서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 중 아케치 고고로가 등장하는 작품만을 16권으로 집대성한 [아케치 고고로 사건수첩] 시리즈를 출간한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고스케와 함께 일본의 대표적인 명탐정으로 일컬어지는 아케치 고고로는 에도가와 란포가 창조한 동양 최초의 탐정 캐릭터이다. 1925년 「D자카 살인사건」에서 일개 서생으로 처음 등장한 이후 1955년 「그림자남」에 이르기까지 에도가와 란포가 지속적으로 집필한 아케치 고고로 시리즈는 성인 독자들 뿐 아니라 어린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소년탐정단 시리즈까지 그 영역을 확대하였으며, 시대를 막론하고 일본 내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구가하였다. 도서출판 b의 [아케치 고고로 사건수첩 시리즈]는 바로 그 유명한 아케치 고고로의 활약상을 사건 발생 순서에 따라 엮었다.
“에도가와 란포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주옥같은 초기 작품들은 일본추리소설사에 불멸의 가치를 남겼다. 그 작품들이 가진 가치는 비단 추리문학사에 한정되지 않는 영원불변의 것이다.”
에도가와 란포 작품 중에는 스스로의 혹평과는 달리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은 작품도 있고, 스스로는 만족했으나 평단의 평가는 좋지 않은 작품도 있었지만, 일본을 대표하는 사회파 추리작가인 마츠모토 세이초의 말처럼 그의 작품들이 일본 추리소설사에 불멸의 가치를 남긴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아케치 고고로 탐정수첩 제2권에 수록된 두 작품 중「난쟁이」가 전자에 속한다면「누구」는 후자에 속한다. 고바야시 몬조는 어느 날 밤 아사쿠사 공원에서 발견한 난쟁이가 푸르스름하게 변한 사람 팔을 떨어뜨리는 것을 목격한다. 그 무렵 사업가 야마노 다이고로의 딸인 미치코가 행방불명되고, 고바야시 몬조의 소개로 아케치 고고로는 이 사건의 진상을 조사한다. 서생 시절을 마감하고 상하이로 떠났던 탐정 아케치 고고로의 본격적인 활약상을 보여주는「난쟁이」는 시리즈 탐정물로서의 가능성을 엿본 작품인 동시에 에도가와 란포의 창작활동의 분기점이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에도가와 란포는 「난쟁이」에서 수수께끼 풀이가 중심인 전작들에 비해 탐정 아케치의 활약에 많은 지면을 할애할 뿐 아니라 기괴함과 엽기성, 그리고 에로티시즘까지 가미한 새로운 경향의 탐정소설을 시도하고 있다.
이에 반해 「누구」는 「난쟁이」보다 시기적으로는 나중 작품이지만, 초기작과 같이 속임수 없는 트릭과 논리적인 추리를 바탕으로 수수께끼 풀이를 추구하였다. 한마디로 에도가와 란포 본격추리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누구」는 그런 점에서 에도가와 란포가 자신의 작품을 다음 단계로 이행시키기 위해 전작들에 보내는 고별사로도 읽힌다.
■ 지은이 소개
• 에도가와 란포(江戸川乱歩, 1894~1965)
일본 미에(三重)현 출생. 본명은 히라이 타로(平井太郎). ‘에도가와 란포’는 에드거 앨런 포에서 착안한 필명이다. 어린 시절부터 국내외 추리소설, 그중에서도 특히 영미계 탐정소설에 심취하였으며, 1923년 ≪신청년≫에 단편소설 「2전짜리 동전」을 발표함으로써 추리작가로 데뷔했다. 1925년 「D자카 살인사건」에서 첫선을 보인 탐정 아케치 고고로가 큰 인기를 얻자 꾸준히 그가 등장하는 소설을 집필했다. 본격추리소설 외에 괴기와 엽기, 에로티시즘, 환상성, 초자연성, 잔학성 등이 부각되는 작품들을 쓰는 한편, [소년탐정단] 시리즈 등도 꾸준히 발표하여 성인독자는 물론 어린독자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게 된다. 에도가와 란포가 평생에 걸쳐 쓴 작품들은 그 자체가 일본추리소설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창작 활동 외에도 평론 등을 통해 해외 추리소설을 일본에 소개하였으며, 일본탐정작가클럽을 창설하고 ‘에도가와 란포 상’을 만들어 신인작가를 발굴하는 등 일본 추리소설의 저변을 크게 확대시켰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 그는 명실상부한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로서 칭송받고 있다.
• 이종은
이화여자대학교 교육공학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전문사 과정)를 졸업했다. 영화전문지 ≪키노≫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90년대 한국, 그 욕망의 투사」(≪한국형 블록버스터, 아틀란티스 혹은 아메리카≫), 「일촉즉발 도래청년」(≪한국 뉴웨이브의 정치적 기억≫) 등의 글을 썼다.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번역학과(석사 과정)를 수료했다.
■ 차례
난쟁이 7
누구 183
작가의 말 259
옮긴이의 말 277
작가 연보 281
■ 본문에서
몬조는 아케치가 일부러 모호하게 말하며 그를 약 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때 문득 전에 보았던 난쟁이의 흉측한 모습이 떠올랐다. 그 무렵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실에 봉착하면 바로 그 기형아를 떠올리게 되었다. (p. 117)
나도 알고 있어. 불행히도 이런 몸으로 태어나는 바람에 천성이 삐뚤어져서 미친 거야. 항간의 멀쩡한 것들이 전부 미워 죽겠어. 나한테는 원수나 다름없는 놈들이야. 너니까 말하는 거야,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나는 앞으로 더욱더 나쁜 짓을 할 작정이야. 운이 나빠 붙잡힐 때까지는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만큼 다할 거야 (p. 125~126)
음악가가 불협화음에 민감한 것처럼 탐정은 사실의 부조화에 민감할 필요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종종 사소한 부조화의 발견이 추리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죠. (p. 167)
범인은 당신입니다. (p. 253)
당신은 아케치 고고로가 논리만 따진다고 말씀하셨죠? 하지만 그런 내가 소설가의 공상보다는 실질적이라는 것은 아시겠지요.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p. 257)
■ 옮긴이의 말
에도가와 란포의 화자들처럼 말하자면 「난쟁이」를 번역하는 과정은 매우 ‘묘한’ 체험이었다. 문장이 쌓여 하나의 단락이 되어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이 (변사 없는 서구) 무성영화가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난쟁이」 이전의 초기 단편들이 ‘이야기’의 화법이라면 「난쟁이」는 이야기가 시각적으로 구조화되어 있어, 읽다보면 눈앞에 영화 같은 장면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자신의 주인공들처럼 이색적인 쾌락을 찾아다니는 ‘엽기자’답게, 그리고 탐정소설만큼이나 환등기를 비롯하여 여러 광학적 기기들을 탐닉하던 ‘렌즈 박사’ 란포에게 영화라는 시각적 쾌락은 큰 매혹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판타지적 측면을 「파노라마 기담」에 아낌없이 담았다면, 「난쟁이」에서는 모험활극의 서스펜스적인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는지도 모른다.
또한 「난쟁이」가 매혹적인 것은 아사쿠사 때문이다. 초반부에 고바야시 몬조가 아사쿠사 공원을 지나는 장면을 읽노라면 일종의 ‘산책자의 풍경’이 연상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그 시간은 오래 지속되지 않으며 거기서 난쟁이가 발견되는 순간, 「천장 위의 산책자」의 사부로가 말했던 것처럼 범죄애호자들이 더할 나위 없이 사랑하는 무대로 변하지만 말이다. 「아사쿠사 취미」라는 수필에서도 애정을 고백했듯이 에도가와 란포는 종종 작품 속에 아사쿠사를 등장시키는데, 그중에서도 국면에 따라 그 얼굴을 달리하는 「난쟁이」의 아사쿠사는 참 절묘했다.
■ 추천사
외국 작품에 견줄 수 있는 일본 탐정소설의 출현을 애타게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훌륭한 작품이 등장했다. 진정으로 외국 작품과 견줄 수 있는, 아니 어떤 의미에서 더 뛰어난 창작소설이 탄생한 것이다.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이 바로 그것이다. -고사카이 후보쿠
에도가와 란포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주옥같은 초기 작품들은 일본추리소설사에 불멸의 가치를 남겼다. 그 작품들이 가진 가치는 비단 추리문학사에 한정되지 않는 영원불변의 것이다. -마쓰모토 세이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