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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깨어나 혼자

시리즈 b판시선 045
기타사항 2022 세종도서 선정
출판일 2021-08-30
저역편자 정철훈
출판사 도서출판 b
가격 10,000
도서규격 반양장본 | 124 X 194mmㅣ151쪽
ISBN 979-11-89898-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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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발행하며

 
“대륙적 서정의 경계 허물기,
중년의 심연 속에서 안과 밖의 일치”
 
한국문학에 ‘국경 바깥’ 혹은 ‘접경 부근’이라는 디아스포라의 현장을 소환함으로써 남북분단, 경계 허물기, 국경 허물기 등을 주제로 한 정철훈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가만히 깨어나 혼자』가 출간되었다. 이 시집은 독특한 대륙적 서정을 드러내 보이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동안의 시편들이 주로 국경 너머 이주민의 신산한 삶과 현실을 포착한 외적 디아스포라에 맞춰져 있었다면 이번 시집은 내적(혹은 내국(內國)) 디아스포라에 초점을 맞춘 서정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때, 내적 디아스포라라고 함은 외지나 타지에 대비되는 영토적 개념이 아니라 국경의 안쪽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자기 안의 심상, 혹은 누구나 단독자로서 살아가고 있는 시대적 외로움의 심상을 지칭한다. 이번 시집은 그동안 러시아로, 중앙아시아로, 만주로 떠돌았던 25년의 작품활동을 뒤로 하고 이제는 ‘안으로’ 돌아와 안과 바깥의 심연을 ‘일치’시키고 있어 한층 의미를 더한다.
“너는 다섯 손가락을 가진 자아가 되어/물끄러미 나를 쳐다보고/나는 더는 서러워하지 말라며/ 너를 호호 불어주었다”(「장갑」 부분)라거나 “오죽했으면 나 같은 것에게 붙어/그것도 발가락 사이에서 피워냈을까/너를 지우려고 병원에 갔을 때/자꾸 미안해 쳐다볼 수 없었다”(「사마귀」 부분)에 등장하는 ‘너’와 ‘나’는 바깥과 안쪽의 심상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렇게 보면 바깥과 안쪽에 대한 인식의 동시성이 이번 시집의 두드러진 변화이자 새로운 시적 갱신의 지점인 것이다.
“누구도 가족 아닌 인류는 없고/그건 나와 우리의 사망과 동시에/무한대의 사망을 예고하는 타전이었다”(「오늘의 타전」 부분)라거나 “나는 여기에 있으면서 동시에 거기에 있다/시간을 옮겨 다닐 수 있다는 것/내 단어들은 여기서 만들어진다”(「두 개의 사월」 부분)에서도 동시성에 대한 인식은 각별하다.
그런데 동시성은 동시성에 머물지 않고 통시성과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 “나도 가끔 늑대처럼 울부짖는다/내부가, 내부의 위기가 비슷하다/쓰다 버린 것의 동질감이 그렇고/모든 건 버려진다는 보편성이 그렇다”(「옆집 부근」 부분)가 그것이다.
그 외에 「원주」, 「시간이 터져버렸다」, 「소식」, 「파」, 「냄비는 따끔하다」, 「두 번째 자연」 등의 시편에서도 통시성과 보편성의 획득은 두드러진다. 그런데 시인의 인식은 ‘눈에 보이는’ 동시성과 보편성에 머물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로 돌진해 들어간다.
“냄새의 영광은 사람도 개도 아닌 하늘의 것/육신이 어떻게 해탈하는지 지켜보는 것은/땅의 영광이지//(…)//뼈가 정확히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몰라/나는 뼈가 스스로 말하기를 기다렸다”(「개가 물어가는 뼈에게 고함」 부분)에 이르면 땅에 묻혀 산화되어가는 뼈에게 말을 거는 ’파토스‘의 상태가 된다. 아니, 우리는 매일매일 로고스(이성), 파토스(감정), 에토스(본성)의 중첩으로 살아가고 있을진대 정철훈의 시는 이 세 요소가 자기 안에서 하나로 융합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밖에서 저벅거리는 발걸음과 바깥의 소란을 안에 들어와 듣고 있다.
안에서 듣는 바깥의 저벅거림, 바깥의 소란을 문 하나를 사이에 둔, 아니 문이라는 경계도 지워진 내 안의 풍경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물질과의 합일 상태에서 시인 자신마저 지워버리는 실종 상태에 대한 묘파는 압권이 아닐 수 없다.
 
“폭설 또 폭설/어디까지가 물질이고 정신인지/양극을 섞어버리는 혼돈/나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내가 없어졌다/폭설 속에서”(「폭설 속에서」 부분)
 
풍경은 바깥에 있고 상처는 안에 머문다지만 정철훈의 신작 시집은 안의 상처가 바깥의 풍경을 쓰다듬고 위로하는 새로운 시적 층위를 보여준다. 시적 화자가 (한국전쟁 때 땅에 묻힌) 뼈에게 말을 걸거나, 사과가 뼈에게 말을 붙이다가 “내 생각을 사과에게 어떻게 주입시키지?”라고 마침내 뼈의 생각을 듣는 침묵의 시간 혹은 멈춰 섬의 지점이 그것이다. 그렇기에 시인은 시집 제목을 “혼자 시를 짓다가 무너뜨리고/다시 시를 짓는 혼자”(「가만히 깨어나 혼자」 부분)의 상황으로 상정했던 것은 아닐까.
시집 말미에 해설이나 발문 대신 실린 「시인의 산문-다시 찾은 습작노트」는 시인이 고교 시절, 천재 작가 이상(李箱)에게 심취한 문청 시절을 회고하는 편지 풍이다. 시인이 근년에 ‘이상 사후의 가족비사’를 탐사한 오빠 이상, 누이 옥희(2018)를 출간했음을 상기하면 그의 문학적 출발을 이상이라는 모더니스트에 심취한 1970년대 말에 이어붙이는 문학적 자전이자 독백으로 읽힌다. 이상의 아버지 김영창이 종이절단기에 세 손가락을 잃은 상실의 내면과 부친의 세 형이 한꺼번에 월북한 이래 가문의 몰락을 오래 지켜보았던 시인의 상실을 되짚는 대목은 흥미롭다.
 
■  지은이 소개
 
정철훈
1959년 광주 출생. 러시아 외무성 외교아카데미에서 공부하고 〈10월 혁명 시기 극동러시아에서의 한민족 해방운동―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김 스탄케비치를 중심으로〉로 역사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민일보》와 《뉴시스》에서 문화부장으로 일했다. 주요 저서로 시집 《살고 싶은 아침》 《뻬쩨르부르그로 가는 마지막 열차》 《빛나는 단도》 《만주만리》, 장편소설 《인간의 악보》 《카인의 정원》 《모든 복은 소년에게》, 산문집 《뒤집어져야 문학이다》 《감각의 연금술》 《문학아, 밖에 나가서 다시 얼어 오렴아》, 전기 《내가 만난 손창섭》 《오빠 이상 누이 옥희》 《백석을 찾아서》 등이 있다.
최근작 : <가만히 깨어나 혼자>,<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김>,<백석을 찾아서> … 총 25종 (모두보기)
 
■  차례
 
ㅣ시인의 말ㅣ 5
 
제1부
 
나무의 꿈 13
장갑 14
사마귀 15
공출 16
그곳과 이곳 18
개가 물어가는 뼈에게 고함 20
고양이와 나 23
사랑의 발명 24
지하철 환승역에서 26
말의 역류 28
숨 29
평전 30
추모 32
오늘의 타전 33
달과 전봇대와 나 36
가만히 깨어나 혼자 38
 
제2부
 
봄의 번역 43
감자 44
두 개의 사월 46
나, 김용균은 47
회복하는 인간 50
옆집 부근 52
원주 54
모호한 사진 56
시간이 터져버렸다 58
교양의 시작 60
7월 어느 날 62
다시 7월 어느 날 63
청색 대문 64
말더듬이와 사과 66
논술보다 묵상 68
소식 69
 
제3부
 
파 73
불편한 심리극 74
냄비는 따끔하다 76
반성의 멜로 78
무언의 항명 80
토마토의 은유 82
뿌리식물 84
두 번째 자연 86
멀리서 오는 점성 88
아욱을 이길 수 없다 90
망가진 우산 91
꿈꾸는 정온동물 92
가을 모기 94
낙엽 96
밤의 동굴 97
손잡이에 관한 사유 98
열쇠 100
 
제4부
 
남정현 선생의 웃음 103
손지가 내게 온다면 104
고향을 떠나올 때 106
뜨거운 피 108
청파 110
한밤의 미역국 112
떴다 114
낙지 117
화곡 120
겨울 코트를 벗으며 122
지상에 대한 마지막 경례 124
폭설 속에서 126
눈물에 웬 청어 냄새? 131
 
ㅣ시인의 산문ㅣ 다시 찾은 습작 노트 133
 
■  본문에서
 
<가만히 깨어나 혼자>
 
속초 사는 Y시인과 양평 사는 K시인을 가끔 떠올린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의 생활에
끼어드는 것 같은 가끔이다
 
Y시인은 고향에 살고 있지만
가보면 고향 부근일 뿐
K시인은 양평에 살고 있지만
가보면 타향 부근일 뿐
실은 가본 적 없다
 
가본 적 없는 두 사람을 가끔 꺼내 읽는다
꺼내 읽을 때마다 베개를 끌어안고
내게 과분한 혼자가 있다
그럴 때면 차부에서 내려 편의점을 지나고
가로수 길을 걸어 귀가하는 그들의 등이 보인다
 
우리가 잔이나마 앞에 두고
한자리에 앉은 게 십 년은 더 되었다
누가 술을 따랐는지 기억에 없다
두 시인 사이에 끼어든다는 게
이렇게나 희미한 기억이다
희미해지면 다시 두 시인을 꺼내 읽는다
 
“양평 한번 내려와”
그 말을 여태 기억하고 있을까
속초도 양평도 두 시간 남짓인데
보고 싶지만 혼자가 좋다
두 시인도 혼자가 좋을 것이다
혼자 시를 짓다가 무너뜨리고
다시 시를 짓는 혼자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되었다
 
언젠가 서울을 떠나게 되면
발 하나는 속초를 향해
다른 하나는 양평을 향해 터벅터벅,
그러자면 나에게 여물을 넉넉히 줄 수밖에 없고
몸이 하나라는 사실이 정말 무섭다
 
새벽에 눈을 떠서
내가 이길 수 없는 것을 떠올리는 가끔,
아주 가끔이다
 
<멀리서 오는 점성>
 
오늘은 길을 걷다가
허공을 향해 눈을 부릅떠보았다
아주 먼 허공이 아니라
머리에서 한 뼘 위 허공
그러면 내 눈에 습기가 엉켜 드는 것이다
 
나는 습기가 아주 먼 곳에서 왔다는 것을 안다
내가 기다리는 건 어떤 점성일 게다
멀리서 오는 점성
어제는 친구와 술을 마시며
왜 한 번도 길을 잃어버린 적이 없냐는
말을 들었다 통렬함이 없다는 말도 들었다
 
그건 좀체 자세를 흩뜨리지 않는
내 소시민적 기질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나에겐 울부짖음이 없고 남루가 없고
방황이 없고 상실이 없고 비에 젖은
무의식의 비애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건 모두 눈물과 관련되어 있다
내가 기다리는 건 멀리서 오는 점성이고
남들은 그런 나의 기다림을 모른다
그럴지도 모른다
 
<고향을 떠나올 때>
 
오래전 아버지가 있었다
광주 계림동 마당 너른 집 툇마루의 기둥을 붙들고 드잡이하던 아버지가 있었다
이렇게 살 바에야 죽는 게 낫겠다며 분통을 터뜨리던 아버지와 아버지의 허리춤을 붙들고 울던 어머니와 야, 야, 이러면 못 쓴다, 아버지의 등을 토닥이던 할머니와 그 연극무대를 토방에서 올려다보던 아이가 있었다
 
기둥이 뽑히고 지붕이 내려앉을 것 같던 그때
아이와 눈이 마주친 순간
희번덕거리던 눈동자의 살기가 거짓말처럼 삭아들던 아버지가 있었다
 
임종 사흘 전 아버지에게 물었더니
그런 일이 다 있었더냐
빙그레 웃던 아버지가 있었다
 
“전쟁 직후 내가 월북한 셋째 형의 자격증으로 유치원에 들어가지 않았겠냐
그러다 차차 자격증을 땄지만 형사놈이 그걸 꼬투리로 매달 월급봉투를 가로채 갔지
내 이름으로 살고 싶어 상경을 했단다”
 
그때 그 아이가 멀뚱멀뚱 천장만 바라보던 아버지 곁을 지킬 때
이제 마음 편히 한번 가볼까, 하고 기저귀를 찬 채
고향으로 돌아가던 아버지가 있었다
 
■  시인의 말
 
진인은 외롭다고 한다. 외로움을 찾아 지닌다고 한다. 나는 진인도 뭣도 아니지만 그 말뜻을 깊이 새길 수는 있다.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혼자만의 싸움. 나를 혹사시키는 혼자가 좋다. 외로움이 좋다. 캄캄한 우주에서 해도, 달도, 나도 혼자다.
혼자만의 나를 탕진하고 돌아오니 광이 텅 비어 넓어 보이는 공복이 좋다. 그래, 나는 비로소 나와 작별할 수 있겠구나.
 
■  추천사
 
아버지(들)의 ‘실종’이 문학의 실종 공간을 섬세하게 메꿔나가는 그로테스크한 싸움이 저물녘 상처받은 짐승의 울음으로 비어져 나오다가 마침내 그 자신마저 실종시켜버리는 귀면(鬼面)의 시다. 그러고도 남은 울음이 있다면 여전히 발굴되지 못한 실종의 뼈에 바쳐져야 하리라! - 이산하 (대안연구공동체 시인학교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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