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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공능과 해체의 시론

출판일 2022-04-18
저역편자 이재복 지음
출판사 도서출판 b
가격 20,000
도서규격 반양장본ㅣ152 x 224mm l 365쪽
ISBN 979-11-89898-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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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공능과 언어의 공능을 종합하는 정체공능(整體功能)의 시론”

 

 

 

1. 이 책의 소개

 

   이재복 한양대 교수의 저서 『정체공능과 해체의 시론』이 도서출판 b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저자가 몸의 공능과 언어의 공능, 다시 말하면 몸의 공능과 같은 언어의 공능으로 이루어진 시를 발견하고 그것의 원리를 풀어낸 정체공능(整體功能)의 시론이다. 그간 저자는 ‘몸’을 화두로 하여 자신의 학문적 방향과 그 의미를 모색해 왔는데, 이번 시론은 그의 이러한 몸 공부와 시 공부가 만나 탄생한 결과물이다. 

   ‘정체공능’이라고 할 때 ‘정체(整體)’는 본래 이항 대립이 아닌 ‘불이(不二)’나 ‘불연기연(不然其然)’ 같은 융화와 혼융의 원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시 혹은 시의 언어는 다른 어떤 장르보다 이런 원리를 강하게 드러내는데, 저자에 따르면 이것이 시의 언어에 몸의 정체성(整體性)이 내재해 있다는 것을 잘 말해주는 것이다. 이것이 정체공능 시론의 단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먼저 서구와 동아시아의 언어에 대한 인식 차이에 주목한다. 이 차이 중 대표적인 것은 언어를 ‘실체’와 ‘생성’ 혹은 ‘존재’와 ‘생성’으로 인식하는 데서 오는 차이이다. 서구의 존재론은 기본적으로 실체를 강조한다. 이와는 달리 동아시아의 존재론은 생성을 강조한다. 동아시아의 존재론은 우주, 자연, 인간 등을 하나의 유기적인 흐름, 다시 말하면 전체적인 생명의 유출 과정으로 보는 ‘정체공능’의 존재론이다. 이 세계에서 모든 것들이 분리되어 있거나 분할되어 있지 않고 하나의 전체적인 유출 과정 내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소멸하는 공능의 상태를 드러낸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관념이 아니라 실질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해석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정체공능으로서의 세계란 우리가 숨 쉬고 지각하는 모든 세계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미지의 잠재적인 세계까지를 포괄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렇게 세계를 정체공능의 차원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우주, 인간, 자연 등을 ‘기(氣)’로 이루어진 세계라고 간주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와 시론을 정체공능의 차원으로 인식하고 또 해석하는 일은 서구적인 존재론에 익숙해 있는 우리에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세계를 몸이 아닌 실체화된 관념이나 개념의 차원으로 인식하는 데에 익숙해진 우리의 견고한 의식 때문이다. 

   이 책에서 시론의 토대로 제기한 정체공능적 사유는 하나의 대안이 아닌 동아시아의 흐름 내에서 오랜 발생론적 기원과 변주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른 동아시아의 몸이자 생명 그 자체인 것으로 제시된다. 또 동아시아 사유의 한 축으로 작용해 온 정체공능의 감각은 그동안 실체 중심의 서구적 사유의 미망으로부터 깨어나게 하는 어떤 힘을 내재하고 있는 것으로도 본다. 

   『정체공능과 해체의 시론』은 “정체공능이 고정됨을 넘어 끊임없이 변화하고 변주하는 생성의 과정 속에 있다”는 저자의 사유와, “시가 다른 생산물과 달리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도 늘 새롭게 느껴지는 생명 같은 것은 그것이 몸의 지극한 공능을 통해 만들어진 세계이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시론이 수미를 이룬다. 

 

 

   2. 지은이 소개

 

   이재복(李在福)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이상 소설의 몸과 근대성에 관한 연구(2001)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 소설과사상 겨울호에 평론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쿨투라, 본질과 현상, 현대비평, 시와 사상, 시로 여는 세상, 오늘의 소설, 오늘의 영화 편집ㆍ기획위원을 역임했다. 고석규비평문학상, 젊은평론가상, 애지문학상(비평), 편운문학상, 시와표현평론상, 시와시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국제문화대학장 겸 한양대 한국미래문화연구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몸, 비만한 이성, 한국문학과 몸의 시학, 현대문학의 흐름과 전망, 한국 현대시의 미와 숭고, 우리 시대 43인의 시인에 대한 헌사, 몸과 그늘의 미학, 내면의 주름과 상징의 질감, 벌거벗은 생명과 몸의 정치, 근대의 에피스테메와 문학장의 분할, 정체공능과 해체의 시론 등이 있다. 

 

 

   3. 차례

 

  머리말 … 7

 

    Ⅰ 언어와 사물

  1. 언어와 사물성 … 15

  2. 응시와 침묵 … 31

  3. 현대시와 딕션 … 41

  4. 비트의 감각과 시의 형식 … 51

 

    Ⅱ 존재와 발견

  1. 발견의 시학 … 73

  2. 살과 줄탁동시 … 88

  3. ‘그늘’ 혹은 상상의 토포필리아 … 101

  4. 무위와 질박으로서의 도 … 109

  5. 시의 의미 지평과 고독의 발견 … 120

 

    Ⅲ 해체와 놀이

  1. 언술의 파편화와 시의 현대성 … 137

  2. 선의 원리와 리좀적 상상력 … 160

  3. 그로테스크 혹은 맨얼굴의 페르소나 … 191

  4. 아이덴티티, 놀이 그리고 21세기 … 203

 

    Ⅳ 생성과 공능

  1. 생성과 공능의 감각 … 229

  2. 생명과 율려의 사상 … 240

  3. 한, 신명, 그늘의 전통과 현대시 … 268

  4. 시와 정체공능의 미학 … 298

  5. 영동천심월, 그늘 그리고 백남준 … 326

  6. 굿, 신명 그리고 백남준 … 339

 

  인명 찾아보기 … 351

  용어 찾아보기 … 357

 

 

4. 본문에서 

 

   시는 어떤 양식보다도 중층적이고 이중적인 언어와 지평 구조를 토대로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시의 언어가 겨냥하고 있는 것은 ‘과학에 기반한 객관적인 현실이 아니라 지각되고 체험된 세계의 현실’이다. 이것은 시인과 시적 대상 혹은 주체와 세계 사이의 관계 내에서 지각되고 체험된 복잡한 언어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비로소 시적 지평이 드러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사유에서 그 존재란 형식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단순한 형식논리로서의 언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주체와 세계 사이의 지각되고 체험된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언어를 가리키는 것이다. 가령 시인이 꽃을 노래한다고 할 때 그 꽃을 언어의 형식논리 안에서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 꽃의 존재성은 온전히 드러나지 않게 될 것이다. 그 꽃이 하나의 꽃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세계 내에서 그것을 지각하고 체험할 때 성립되는 것이다. 우리는 형식논리 안에 그 꽃을 가두어놓고 그것을 꽃이라고 부르고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지각과 체험의 과정이 부재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행위이기 때문에 꽃의 존재성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다. 주체와 세계가 배제된 채 언어의 형식논리에 의해 성립된 꽃은 ‘존재 망각’에 지나지 않는다. 존재 망각의 언어는 시의 언어가 지향하는 바가 아니다. 오히려 시의 언어는 그 존재 망각에 저항한다. 이런 점에서 시의 언어는 존재의 자각이라는 열린 지평 구조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18~19쪽, 「언어와 사물성」 중에서)

 

   사물에 대한 시인의 응시와 침묵은 비록 그것이 언어의 형태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시의 중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의 응시와 침묵은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이르기 위한 한 방법이다. 시인의 응시와 침묵의 정도에 따라 사물의 모습과 형태는 다르게 드러난다. 시인의 응시와 침묵이 그 사물의 정점 혹은 중심을 향해 육박해 갈수록 그 사물의 현상 전체는 온전히 제 모습을 드러내게 되며, 시의 언어는 여기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다. 시의 언어를 탄생시키는 이러한 시인의 응시와 침묵은 이미 그 안에 잠재적인 시의 형태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떤 사물의 전체적인 현상을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그 현상의 토대가 되는 지각의 다양한 모습을 깊이 있게 응시하여 그 전모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사물의 현상 혹은 지각의 다양한 현상은 그것을 어떤 물질로 이해해서도 안 되고 또 그것을 정신이나 실체로 이해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어떤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바탕이나 지평을 아우르는, 때와 장소가 시작되는 지점이자 그것들과 매개되어 있는 그런 것들에 의해 나타나는 세계인 것이다. 현상이 현상으로서 드러나게 하는 바탕이자 매개가 있어야 존재가 가능하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살(la chai)’이라고 할 수 있다. -(36~37쪽, 「응시와 침묵」 중에서)

 

   생명이나 생성이 세계 이해의 토대로 작용하는 경우 우리 인간의 독특한 의식의 산물로 평가받아온 예술에 대한 의미와 해석 역시 달라질 수 있다. 가령 시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그것을 인간의 의식 내에서 답하는 경우와 그것을 인간을 넘어 천지의 차원에서 답하는 경우를 상상해보라. 인간의 의식 내에서 보면 시는 인간의 이성(사상)이나 감정(정서) 차원을 넘어설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을 넘어 천지의 차원에서 보면 시는 ‘천지의 마음’을 드러낸 것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의식 차원에 국한해서 보면 이것이 과장된 수사로 인식될 수도 있지만 천지의 차원에서 보면 그것은 실재의 지극함을 드러낸 것에 불과한 것이 된다. 이것은 인간과 천지 혹은 인간과 우주(자연)가 분리되어 있거나 의식 차원에서만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 둘 사이가 하나의 흐름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인간과 우주는 기의 흐름으로 이어져 있고, 그 기는 인간과 우주를 불이(不二)의 관계로 인식하게끔 해준다. 인간과 우주 혹은 인간과 자연이 둘이 아니라는 사실은 인간의 의식이나 관념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인간과 우주가 둘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늘 느끼면서 살고 있다. 인간은 의식의 차원이 아니라 감각의 차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232~233쪽, 「생성과 공능의 감각」 중에서)

 

   정체공능으로서의 자연이나 우주에 대한 망각은 우리의 몸에 대한 망각과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가 늘 몸을 느끼고 지각하듯이 자연이나 우주 역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연이나 우주가 너무 크고 깊어 인지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곧잘 그것을 망각하게 된다. 이 망각은 자연을 중요한 존재 기반으로 하는 시의 경우와 깊은 연관이 있다. 특히 자연이 신으로 인식되어 온 동아시아에서는 그것이 단순한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세계 전체의 공능으로 존재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근대 이후 우리 시는 자연으로부터 멀어지면서 겪게 되는 인간의 실존적인 불안을 형상화해 왔지만, 그 불안이란 기실 정체공능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망각에 다름 아니다. 이 사실은 자연 자체가 소멸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에서 그것이 망각된 상태로 존재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것을 망각한 것일 뿐 정체공능으로서의 자연은 전혀 변하지 않은 채로 존재해 왔다면 그것과 관련하여 시가 은폐하고 있는 자연을 발견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망각한 정체공능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발견은 곧 시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될 것이다.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에서의 시는 자연에 은폐된 도의 현현으로 볼 수 있다. 자연이 도구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과 삶 그리고 제도에 기본적인 공능으로 작용하면서 그것이 은폐하고 있는 미묘하고 신비한 세계를 하나의 양식을 통해 구현한 것이 바로 시인 것이다. -(324쪽, 「시와 정체공능의 미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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