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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시학

부제목 감응하는 시와 예술
출판일 2022-03-28
저역편자 최진석 지음
출판사 도서출판 b
가격 22,000
도서규격 반양장본ㅣ152 x 224mm l 468쪽
ISBN 979-11-89898-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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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출현하는 시에 대한 예리한 비평적 포커스”

 

 

1. 이 책의 소개

 

문학평론가이자 문화연구자인 최진석의 신간 사건의 시학은 최근 한국 현대시의 경향과 현상, 전망을 타진하는 문학평론집이다. 시인이나 시작품의 성격이나 구조 등을 논의하는 기존 평론의 관성을 벗어나, 2015년 이후 한국 사회를 움직였던 각종 사건들과 사태들에 예의주시하며 새로운 시적 동향을 찾아보고 그 미래적 경로를 모색하려는 저자의 관점이 돋보이는 책이다. 총 5개 부로 이루어져 있고, 시비평과 예술비평을 포함하여 총 23편의 평론을 수록함으로써 우리 시대 문학예술의 현재성을 알아가기 위한 탐침을 제공하고 있다.

 

▶ 제1부 사건의 시와 시적 사건

새로운 시의 출현을 ‘사건’이라 명명하는 저자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시가 놓인 자리와 문화예술적 지위, 그리고 문명사적 지평을 1부에서 다룬다. 촛불혁명이 일으킨 강렬한 사회적 감응이 젊은 시인들의 문학적 감각에 끼친 영향을 돌아봄으로써 예술과 사회가 결코 분리된 별개의 영역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코로나19라는 범세계적 유행병(팬데믹)이 초래한 시적 감수성의 변동에 대해서도 탐문하는데, 인간 이후에 도래할 새로운 존재자를 향한 물음은 우리 시대의 시학이 가장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우는 주제이다. 또한, 문학의 종언이라는 낡은 테제가 곧장 시의 종말이라는 암울한 전망으로 이어지는 요즈음, ‘시적인 것’은 여전히 작동 중인 사건의 한 현상이며, 그것이 우리 시대를 지탱하고 다음 시대를 관조하는 중요한 감수성의 하나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 제2부 시학의 성좌들

총 여섯 편의 평론들로 구성된 2부는 여-성, 미-래, 사-물이라는 주제어를 통해 최근 몇 년간 변화된 문학장의 경향과 그 내용을 짚어보는 글로 시작한다. 주어진 성향 너머의 성향(餘-性), 시간의 인과 바깥의 시간(未-來), 이야기를 갖는 사물(史-物). 이렇게 낯선 개념으로 이루어진 경향은 도래할 시대를 향한 예술적 조감이라 할 수 있다. 이어서 나희덕의 시세계를 과정적으로 톺아보는 글과, 가장 최근의 시집에 대한 평론을 통해 시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이 역설적으로 결합하는 지점을 타진한다. 김언의 시학에서 언어학과 유물론이 어떻게 새로운 감각적 파열 현상을 낳는지 고민해 보고, 우리 시대의 문학어가 성립 가능한 지대를 탐색해 본다. 페미니스트이자 페미니스트를 넘어서는 시적 경향을 보여주는 김선향에 대한 평론은 이 시대의 여성과 시가 어떤 관계 속에서 어떻게 구축되는지 흥미롭게 보여주는 글이다. 마지막으로 실천적 시문학의 선구자인 신동엽과 러시아의 아나키스트 표트르 크로포트킨의 관계를 비교문학적으로 분석하는 글을 통해 시적인 것이 자아내는 성좌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 제3부 감응하는 시와 미-래

전체 5편의 평론으로 이루어진 3부는 2016년 이래 한국 사회와 시문학의 관계를 조감하는 글들을 모은 것이다. 촛불혁명과 그것의 공고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들을 돌아본 후, 이 삶의 무대에서 솟아나는 여러 가지 물음들에 대해 답하려 한다. 예컨대, 역사와 시에 대한 전통적인 질문에서 비전통적인 응답을 이끌어내는가 하면, 시적인 감각의 특이성이 여타 예술 장르들의 감각과 어떻게 구별되는가를 묻고 답하며, 최근 시단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계 전반을 사로잡는 ‘비인간’이라는 주제가 어떻게 시 창작 속으로 이입되고 있는지 살펴본다. ‘미-래’는 통상적인 시간 시제인 ‘미래’와 구별되는 저자의 용어법으로서, 예기치 않게 돌발하는 사건적 시간성을 가리키는데, 우리 시대의 시적 경향을 간추리는 중요한 개념에 해당된다.

 

▶ 제4부 클리나멘의 시적 욕망

클리나멘은 고대 원자론 철학자 데모크리투스의 용어로서 대개 편위(偏位)로 번역된다. 칼 마르크스는 세계를 움직이는 힘은 기존의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세계관이 벌이는 직선운동을 이탈하는 새로운 운동이 생겨날 때 나타난다고 말했는데, 그것이 클리나멘이다. 저자는 이 세계의 현재 상태에 만족하지 않고 그로부터 벗어나는 생각과 감각을 발휘하는 것이 시인의 예술 활동이라 주장한다. 민구, 안태운, 정영효, 권정일, 윤지양, 김건영 시인들의 작품세계로부터 지금-여기의 현재성을 벗어나는 탈주적 감각을 발견하고, 그것을 비평적 언어로 옮겨놓는 작업은 저자가 오래전부터 관심을 기울여왔던 ‘생성’이라는 주제와 연결된다. 저자는 젊은 시인들의 클리나멘적 욕망이야말로 시대의 사건에 반응하고 새로운 것을 생성시키며, 그로써 미-래를 여는 원동력이라 단언하고 있다.

 

▶ 제5부 탈주선 위의 예술

여기 실린 세 편의 글은 예술비평에 해당된다. 피터 게이의 모더니즘에 대한 논의를 확대시켜, 아방가르드의 예술적 욕망이란 무엇보다도 자신의 예술성이 진짜인지 아닌지 불안해하는 데서 성립한다는 것이 그렇다. 사실주의나 그 이후의 예술 경향을 비예술적이라 비판하며 성립했던 모더니즘의 예술론은 ‘진짜는 없다’라고 선언된 시대에 어떻게 ‘진짜 예술’이 가능한지를 자문하는 역설의 토대에 있다. 흥미롭게도, 이 같은 질문은 비단 모더니즘만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모든 예술이 직면한 물음이라 할 수 있다. 고윤숙 작가의 서예전에 대한 평론은 문자가 문자를 벗어나는 지점들, 그리하여 문자가 그림이 되고 추상적 관념으로 변형되는 지점을 찾아냄으로써 예술이 흐름의 연속적 생성에 있는 활동임을 보여준다. 같은 맥락에서 금보성 작가의 ‘한글회화’도 조감될 수 있다. 금작가는 한글이라는 문자가 언어와 도상, 관념을 넘어서 그것 자체로서 생동하는 사물이 되는 지점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결국 책 전체에서 저자가 제기하는 예술론은 시의 예술론과 맞닿아 있고, 사건에서 생성으로, 생성에서 미-래로 연결되는 창조적 사유의 흐름을 표현하는 지점에서 완결된다.

   

 

2. 지은이 소개

 

최진석: 문학평론가, 문화연구자, 수유너머104 연구원. 2015년 계간 <문학동네> 평론 부문에 당선된 후 한국 현대문학과 문화에 대한 비평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계간 <뉴래디컬리뷰> 편집인이고, <청색종이> 및 <문화/과학>의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불가능성의 인문학. 휴머니즘 이후의 문화와 정치(2020), 감응의 정치학. 코뮨주의와 혁명(2019), 민중과 그로테스크의 문화정치학. 미하일 바흐친과 생성의 사유(2017) 등을 썼고, 다시, 마르크스를 읽는다(2019), 누가 들뢰즈와 가타리를 두려워하는가?(2013), 해체와 파괴(2009) 등을 옮겼다.  

 

 

3. 차례

 

책머리에 7

 

제1부 사건의 시와 시적 사건

 

사건 이후의 사건 17

-촛불이 열어 놓은 시적 경로들

팬데믹 이후, 세계의 저편 47

-인류세와 지구생태적 위기의 시적 감응들

다시, 시적인 것의 가능성을 위하여 83

-루카치와 바흐친을 넘어서

 

제2부 시학의 성좌들

 

여-성, 미-래, 사-물 101

-지나간 것과 도래할 것, 그 사이의 시학

주름의 시학 121

-나희덕 사유의 접힘과 펼쳐짐

가능주의자, 불가능한 미-래의 시학 153

-나희덕 문학의 지금과 여기

문장과 사건 185

-김언 시학의 언어학과 유물론

F라는 고유한 시의 성좌 217

-김선향의 두 번째 시집에 대하여

아나키의 시학과 윤리학 235

-신동엽과 크로포트킨

 

제3부 감응하는 시와 미-래

 

시간을 지각하는 시작-기계(들) 275

-2016년의 가을의 시편들

주소 없는 편지 299

-2018년 신인들의 시적 감응에 대하여

시는 언제나 미-래의 시제다 317

-역사의 시간과 시의 시간

머뭇거리는 이 봄의 착란들 329

-시적 감각의 특이성에 대하여

시작, 비인간의 노고 341

-(불)가능한 시의 성좌들

 

제4부 클리나멘의 시적 욕망

 

시, 혹은 나라는 타자를 향한 욕망 355

-민구의 시편들

사건의 예감, 클리나멘의 시학 369

-안태운의 신작시

뒤늦게 도착한 출발의 예감 379

-정영효의 근작시에 부쳐

존재하지 않는 요일의 무늬 389

-권정일의 어디에 화요일을 끼워 넣지

초록의 서곡, 기다림의 시간 397

-윤지양의 신작시

시학의 저편 409

-김건영의 파이가 열어 놓은 시간

 

제5부 탈주선 위의 예술

 

예술을 넘어선 예술, 아방가르드의 욕망과 불안 421

-피터 게이의 모더니즘론

획과 탈주선 437

-고윤숙 개인전에 부쳐

배신의 미스터리와 그 희열 449

-금보성의 ‘한글회화’에 담긴 해석의 비밀

 

발표지면 467

 

 

4. 책 속에서

 

   현재 한국 사회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격앙된 목소리들은 무에서 유가 나오듯 생경하게 나타난 요구만은 아닐 것이다. 지나간 세계가 정말 지나가지 않았다면, 곧 사건의 문을 열고 우리가 지나오지 않았다면, 여전히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았을 세계의 감각적 표현이 그 목소리들이다. ‘적폐’라 불리며 파헤쳐지고 심문받고 처벌받는 제도의 온갖 병리들을 우리가 정녕 몰랐던가. 몰라도 어림짐작으로 이미 느끼고 있거나 벌써 다 알고 있던 것들을 이제라도 끄집어내는 이유는 지금 발 딛고 있는 세계에서 그것들이 관행이라는 핑계나 권력의 역학에 의해 더 이상 용인될 수 없도록 하기 위함 아닌가? 또한 문화예술과 언론사회, 공직과 일상의 모든 부면에 폭넓게 번져 있던 성적 폭력과 억압의 구습들 역시 이제야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들이 아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새롭지 않으며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어지지도 않았지만, 이제야 의식의 표면에 또렷하게 부상한 사건적 각성의 대상들이다. 이 같은 전례 없는 사회적 동요와 격발의 근본 원인은 아마도 동일한 현상을 더 이상 동일하게 느끼지 못하게 된 상황의 변전, 즉 사건 이후의 세계감각이 바뀌었다는 데 있지 않을까? 체념과 포기라는 억압된 부정적 감각이 분노와 희열이 뒤섞인 욕망의 감각으로 이행한 결과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촛불이라는 사건 이후, 새로운 세계를 축조하는 사건의 관문을 향해 지금 힘겹게, 그러나 기이한 즐거움을 통해 진전하는 중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세계 구성의 경험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본문 22-31쪽)

 

   서정시의 기원이 개인의 내밀한 감응을 담는 데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세계에 맞서, 타자를 향해 시의 주체는 자신의 속내를 노래로 풀어낸다. 그것은 고독한 속삭임이며 우울한 뇌까림이지만, 그만큼 절실하고 견고한 자아의 목소리를 형상화해 낸다. 그래서 서정시를 읽노라면, 우리는 거기서 자아의 사유와 감정, 표정과 몸짓, 품성과 세계상을 떠올릴 수조차 있게 된다. 시어는 곧 주체의 의지이며, 그의 인간이다 …. 이 같은 서정시학의 전통은 단일한 자아의 단일한 언어, 단일한 시적 세계상을 전제해 왔다. 이에 따라 시를 읽는다는 것은 그 언어적 단편들을 좇는 게 아니라 거기 내재된 사상, 통합된 한 사람의 인격을 보는 것으로 간주된다. 시는 통일된 목소리로 읊어지고, 통일된 관심과 통일된 욕망으로 충전된 사유의 결정체라 할 만하다. 시의 언어는 단지 시적 사상의 외피이자 매개물이기에 부차적인 지위에 머무른다는 것. 예술사에서는 이를 ‘내용 대 형식’의 대립으로 불러왔던바, 시의 이념이 노정하는 사상적 내용만이 시의 문학성을 규정짓는다는 입장이 여기에 속한다. 헤겔로 간주되는 근대 시학의 역사는 이 같은 내용시학의 관점을 대변해 왔다.

   반면, 20세기 시학은 이러한 내용시학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정반대 편에서 구축되었다. 러시아 형식주의로 대표되는 이 새로운 경향은 시가 일단 언어적 산물이란 점에 주목한다. 언어로 직조된 시는 귀에 들리는 소리의 결합물이며, 그 소리의 화음과 배음, 불협화음을 통해 듣는 이의 심정에 감응한다. 시의 기원이 무엇보다도 노래에 있음을 떠올린다면, 이 같은 전환이 비단 ‘형식적’인 흥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노래는 그 내용이 어떠하든, 선율과 가락으로 부르는 사람과 듣는 사람을 사로잡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언젠가 불러보고 들어보았던 노래의 가사는 기억하지 못해도 리듬은 떠올리고 그에 맞춰 흥얼거리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정신이 아니라 몸에 호소하는 노래의 힘, 그것이 시의 본래면목이다. 이렇게 본다면 내용이 본위가 된 시적 이념은 시의 가장 중요한 축이 아니라 부가적인 요소가 되며, 음악적 울림으로서의 언어적 형식이야말로 시의 본위라 할 만하다. 나아가 시적 이념의 산실은 그 어떤 심오한 정신적 내용이라기보다 언어로 조성된 형식의 구조에 있다 해도 좋을 것이다.-(본문 409-410쪽)

 

 

5. 지은이의 말

 

  시를 시로서 경험하게 하는 것은 눈이 아니라 귀로 듣게 하고,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울리게 하는 데 있다. 누군가 타인의 목청을 빌려 말하고 읊조리게 하는 데 있다. 그로써 순전히 듣는다는 데 주의를 기울이고, 소리의 의미를 뒤좇으며 궁구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그렇지 않다면 머잖아 시는 낡은 종이에 찍힌 인쇄 자국에 지나지 않고, 급기야 잉크가 휘발되면서 함께 사라져 버릴 것이다. 일종의 청력적 사건으로서 시의 감응을 우리는 어떻게 겪어낼 수 있을까? 비평은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시화된 비평으로서 또 하나의 사건으로 경험되어야 할밖에. 이것이 과연 내게 가능한 몫일까?

  평론가의 이력을 소설로 출발했는데, 시에 대한 글쓰기를 먼저 묶어 첫 평론집을 내게 되었다. 인생의 많은 다른 일들이 그러하듯, 이 역시 내가 삶이라는 사건에 열려 있음을 보여주는 증표라 감히 말해 본다. 하지만 낯선 시를 마주칠 때마다 여전히 설렘과 당혹의 딜레마에 빠지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나는 계속 시에 대해 말하고 글을 쓸 수 있을까? 예기치 않은 모든 것은 늘 두렵고 힘겹게 마련이지만, 사건에 항상 자신을 열어둘 수 있도록 기원한다. 사건의 시학은 그로부터 시학의 사건이 될 것이다. -(<책머리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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